11일 찾은 서울 동작구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 앞. 
오래된 시장이 있던 자리에 10층 높이의 동작구청 신청사 건물이 우뚝 솟아 있었다. 
건물 1층엔 여느 청사와는 달리 조그만 점포 자리 수십 곳이 공사 중이었다. 대형 쇼핑몰 1층 공사 현장을 보는 듯했다.


내년 4월 문을 열 동작구 신청사는 국내 최초의 ‘관상(官商) 복합’ 청사다. 한 건물에 구청 사무실과 점포 60곳이 모두 들어간다.

 

 

<북한산 조망을 해치지 않기 위해 ‘U’자 모양으로 디자인한 서울 강북구청 신청사 조감도.(위 사진) 1층에는 기둥만 세우고 광장을 넣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꼭대기 층에서는 주변 경관을 내려다볼 수 있게 구름다리를 만들었다. 
아래는 왼쪽부터 서울 동작구청, 종로구청, 강원도청 신청사의 조감도.>

 


원래 이 자리엔 1968년 문을 연 전통시장인 영도시장이 있었다. 
2021년까지 영업은 했지만 시설이 너무 낡아 공실률이 70%에 달했다. 
동작구는 1981년 지은 노량진 청사 자리를 LH에 넘겨주기로 한 대신, 이 자리에 새 청사를 지어달라고 했다. 
끝까지 시장에서 장사하던 상인 50여 명은 신청사 상업 시설로 들어오게 했다. 
임대료도 주변 상가보다 절반 이상 싸게 해줄 계획이다.


30년 넘은 노후 청사를 쓰던 전국 곳곳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잇달아 신청사를 짓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마음껏 이용하고, 관광객까지 끌어모을 수 있는 ‘랜드마크’를 짓는 게 목표다. 
보건소·키즈카페 등 시설을 집어넣어 주민 복지를 확대하는 경우도 많다.


디자인부터 차별화된다. 네모반듯한 ‘성냥갑’ 모양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강북구는 국제 설계 공모 끝에 지난 8월 ‘강북삼경(江北三景)’이라는 이름의 신청사 조감도를 공개했다. 
1층은 기둥만 세우고 사무실은 넣지 않는 ‘필로티 구조’로 만들어 광장으로 활용한다. 
건물은 북한산 조망을 해치지 않기 위해 ‘U’자 모양으로 디자인했고, 17층 꼭대기 양쪽 끝을 구름다리로 연결해 전망대로 활용한다. 
예산은 3470억원. 2028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강북구 관계자는 “구청사가 아니라 관광 명소로 만들어 주변 상권도 살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짓는 종로구청 신청사는 도시의 핵심 기능이 모두 들어가는 ‘복합 청사’다. 
종로소방서, 소방재난본부, 보건소, 구의회가 모두 신청사에 모인다. 
7층에는 개방형 수장고와 야외 미술품 전시 공간을 만든다. 
개방형 수장고에선 종로구가 보관 중인 박노수·김창열 화백 등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게 된다. 
광화문 광장과 지하로 연결되는 것도 특징이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 내려서 지상으로 올라가지 않고서도 바로 구청까지 갈 수 있게 된다. 
종로구 관계자는 “도심 관광객들이 꼭 한 번씩 들르는 체코 프라하의 시청처럼 될 것”이라고 했다.


지역에서도 신청사 건축이 활발하다.
준공한 지 67년 된 강원도청사는 춘천시 동내면 고은리에서 목조 건축을 접목한 건물로 다시 태어난다. ‘하나의 돌’이라는 뜻의 ‘모노리스’라는 이름도 붙었다. 
세 개의 건물이 하나의 지붕으로 이어진 구조다. 기둥엔 철골과 콘크리트를 넣되, 나무 소재로 건물을 감싸 따듯한 느낌을 더한다. 
경기 평택시는 고덕 국제 신도시에 5층 규모 신청사를 짓는다. 
나뭇잎을 형상화한 큰 지붕이 특징이다. 신도시의 높은 빌딩 숲 사이에 나뭇잎 한 장이 놓이는 모양이다.


‘신청사 바람’이 무조건 환영받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업비 규모가 수천억 원에 달해 ‘세금 낭비’ 지적도 적잖다. 
강원도 신청사는 사업비가 약 4995억원, 종로구 신청사도 약 5900억원이다. 
지난 2일 강원도의회에선 “재정 자립도가 낮은데 신청사 건축 비용을 조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예산 문제 때문에 사업을 포기한 경우도 있다. 
서울 서초구는 양재역 사거리에 34층짜리 청사를 재건축하려 했으나, 공사비·인건비 급증으로 사업을 포기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신청사는 직원이 아닌 주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해야만 ‘세금 낭비’ ‘호화 청사’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지역사회와 어우러지는 개방된 청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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