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값 못하는 유엔평화유지군
분쟁 지역서 존재감 없고 사고 쳐
레바논 남부의 유엔평화유지군(UNIFIL) 기지가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은 다음 날인 1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안보리는 15이사국 만장일치로 채택한 성명에서 “유엔평화유지군 인원과 시설의 안전을 존중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슬람 무장 단체 헤즈볼라의 본거지 레바논 남부에서 지상전을 시작한 이스라엘군은 지난 13일 레바논 주둔 평화유지군 기지 정문을 탱크로 부수고 진입했고, 앞서 레바논을 공습하는 과정에선 유엔 병사 다섯 명이 다쳤다.
레바논에서 평화유지군이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신세가 됐다.
국제사회는 유엔군을 공격한 이스라엘을 일제히 비판하고 있지만, 수십 년간 주둔하면서도 평화를 유지하지 못하는 평화유지군에 대한 회의론도 나온다.

<지난 8일 레바논 남부 마르자윤에서 파란색 헬멧을 착용한 유엔평화유지군(UNIFIL) 대원들이 순찰을 하고 있다.>
레바논 주둔 평화유지군은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를 침공한 1978년 창설됐다.
규모는 50여 국에서 파병된 약 1만명으로, 한국의 동명부대도 그 일원으로 2007년부터 레바논에 주둔하고 있다. 2000년 유엔이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에 설정한 ‘블루 라인’이 사실상 국경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이스라엘·헤즈볼라의 교전을 막아내지 못하면서 평화유지군의 억지 능력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평화유지군은 민간인 보호나 자기 방어 등 제한된 조건에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어서 유명무실하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2006년 안보리가 유엔군 주둔 지역에서 적대 행위를 금지한 ‘1701 결의안’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리타니강 이북에 머물러야 하지만 수년 동안 이를 위반해 왔다”고 비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로켓을 발사한 국경 인근 리타니강 지역은 유엔이 평화를 유지하기로 되어 있는 곳”이라고 지적했다.
리타니강 남쪽으로 내려온 헤즈볼라는 로켓과 미사일, 드론(무인기) 등을 동원해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했다.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장 단체 하마스를 돕는다는 구실이다.
이스라엘이 북부 주민의 안전 보장을 명목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전면전이 이어지고 있다.

평화유지군은 중재 역할도 제대로 못 하는 상황이다.
2006년부터 레바논군·이스라엘군과 3자 회담을 정기적으로 주재했지만 지난해 10월부터 중단됐다.
친(親)이스라엘 성향인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는 지난 8월 보고서에서 이런 상황을 전하며 “평화유지군은 계속해서 임무를 다하지 못해 신뢰를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평화유지군은 분쟁 예방과 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1948년 창설돼 지금까지 54국에 파병됐다.
대원들이 파란 헬멧을 써서 ‘블루 헬멧’이라는 별칭도 있다.
냉전 시기였던 1988년 군대로서는 유일하게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선정 이유로 “유엔평화유지군은 국제사회의 명백한 의지를 나타낸다”며 이들이 분쟁 지역에서 긴장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유엔은 레바논, 남수단, 인도-파키스탄 등 11곳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고 있다.
6·25전쟁 때 한국을 돕느라 참전한 유엔 회원국 군대를 통괄 지휘하기 위해 안보리 결의로 창설된 유엔군사령부와는 별개 조직이다.
평화유지군이 평화를 지키지 못한 사례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2012년 서아프리카 말리에서 내전이 격화하자 유엔은 이듬해 평화유지군을 파병했다.
2015년 말리 정부와 반군 세력이 평화 협정을 체결한 뒤에도 양측 갈등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2020·2021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고, 10여 년 주둔하는 동안 평화유지군 병사 총 311명이 사망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해 6월 말리 평화유지군 철수를 승인했다.
대원 약 1만7000명으로 파병 규모가 가장 큰 아프리카 남수단은 수년간 이어진 내전과 무장단체 난립, 종교·부족간 갈등 여파로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해 있다.
남수단과 수단 사이 아베이 지역에선 영유권을 둘러싼 양측의 충돌이 끊이지 않는다.
현재 평화유지군이 주둔 중인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서사하라 등에서도 내전에 따른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2004년 파병한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선 평화유지군이 성범죄를 저지르고, 콜레라균에 오염된 하수를 강에 버려 아이티 국민의 공분을 샀다.
2017년 평화유지군이 철수한 아이티는 현재 갱단이 나라를 장악해 국정이 사실상 마비됐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콩고민주공화국에서도 평화유지군의 성폭력 사건이 보고됐으며, 1990년대 보스니아에선 일부가 인신매매 피해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알선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벌어졌다.(241016)
☞유엔평화유지군
1948년 창설된 국제연합군. 유사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각국 정부에서 자발적으로 파병한 부대로 구성됐다.
분쟁 지역을 감시하고 협정 이행을 지원하는 임무 등을 수행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특정 국가나 지역에 파병이나 철수 여부가 정해진다.
파란색 방탄모를 착용해 ‘블루 헬멧’이라고도 불린다. 1988년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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