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체 선수도 신들린 듯… 펜싱 올림픽 3연패 찌른 3가지 비결

사브르 단체전 세계 정상 비결

 



지난 31일(현지 시각) 그랑 팔레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 
이 종목 통산 10회 우승을 자랑하는 헝가리를 맞아 한국 대표팀은 6라운드까지 30-29로 1점 앞선 채 살얼음판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원우영(42) 대표팀 코치는 이때 과감히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 
베테랑 구본길(35)을 빼고 도경동(25)을 투입한 것. 8강전과 4강전을 뛰지 않아 “몸이 근질근질하다”던 신예 검객은 피스트(piste·펜싱 경기대)에 오르자마자 5점을 연속으로 따냈다. 
한국 남자 사브르가 올림픽 3연패(連覇)를 이룬 결정적 장면이었다.

 

 

<대한민국 펜싱 대표팀 오상욱을 비롯한 코치진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금메달 결정전 헝가리와의 경기에서 도경동 득점때 기뻐하고 있다.>

 


한국이 헝가리를 45대41로 누르고 금메달을 확정 짓자 “대~한민국!” 응원 소리가 메아리쳤다. 
2012 런던 올림픽 우승 멤버 원 코치는 “도경동이 들어가면서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더라. 5점을 연속으로 뽑아낼 땐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경기도 예술, 경기장도 예술 - 지난 31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끝난 파리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대표팀 박상원(앞줄 왼쪽), 오상욱, 구본길(뒷줄 왼쪽), 도경동이 메달을 들고 자축하고 있다.>

 

 

오상욱(28)과 구본길, 박상원(24), 도경동으로 구성된 ‘뉴 어펜저스(어벤저스+펜싱)’가 2012 런던, 2020 도쿄(2016 리우는 사브르 단체전이 열리지 않음)에 이어 3대회 연속 우승 금자탑을 쌓았다. 
지난 27일 개인전 우승으로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겼던 오상욱은 한국 펜싱 사상 첫 올림픽 2관왕에 올랐다. 
한국이 하계 올림픽에서 따낸 통산 300번째 메달. ‘어펜저스’는 한국 사브르 전성기를 상징하는 별명이다. 
김정환(41)과 구본길, 오상욱, 김준호(30)로 이뤄진 원조 ‘어펜저스’는 도쿄 올림픽과 세 차례 세계선수권, 두 차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합작했다. 
김준호가 대표팀을 은퇴하고, 노장 김정환이 부상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대신 신예 박상원과 도경동이 합류하면서 ‘뉴 어펜저스’가 결성됐다. 
오상욱은 “’어펜저스’가 펜싱에 농익은 이들이었다면, ‘뉴 어펜저스’는 쓰나미처럼 몰아치는 힘이 있다”고 했다.


쟁쟁한 선배를 대신하게 된 박상원과 도경동은 압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두 형이 용기를 심어줬다. 
구본길은 “우리가 못하면 너희가, 너희가 못하면 우리가 커버해줄 수 있다. 서로 믿고 가자”고 했다. 
‘막내 라인’도 두 형에게 힘이 되어줬다. 도경동은 8강전에서 구본길이 흔들리자 라커룸에서 ‘형, 왜 자신이 없어? 내가 (후보로) 뒤에 있으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고 했고, 자신감을 찾은 구본길은 4강전부터 제 기량을 발휘했다. 
오상욱도 도경동이 피스트 아래에서 수시로 ‘형이 최고야!’라고 외쳐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오는 10월 전역 예정이던 국군체육부대 소속 도경동은 금메달로 조기 전역 혜택을 받게 됐다. 박상원은 파워 넘치는 플레이를 앞세워 활기를 불어넣었다.


명실상부한 사브르 세계 최강자로 거듭난 오상욱은 “단체전을 완벽하게 끝냈다면 30분 정도는 자만할 수 있었을 것 같다”면서 “마지막에 고전하는 모습을 보인 게 마음에 걸린다.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올림픽 3연패 과정에 모두 참여한 유일한 선수인 구본길은 “2026 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고 싶다”고 했다. 
결승전이 벌어진 31일은 원래 둘째 아들 출산 예정일. 아내가 코로나에 걸리면서 수술 날짜를 구본길 귀국일(8월 5일)에 맞췄다고 했다. 
“모찌(태명)가 오늘 나왔으면 행운을 가져갔을 거라고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아빠를 위해 기다려준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 펜싱 대표팀 구본길, 오상욱, 박상원, 도경동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수여받은 후 기뻐하고 있다.>

 


금메달로 가는 길에 가장 고비가 될 것으로 보였던 경기는 프랑스와 4강전이었다. 
프랑스 홈 관중들은 응원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하지만 ‘뉴 어펜저스’는 압도적 실력으로 관중을 잠재웠다. 
진천선수촌에서 함성과 박수 소리가 담긴 스피커를 틀어놓고 ‘소음 훈련’을 한 게 도움이 됐다고 한다. 
국제 심판을 초청한 연습 경기에서 일부러 불리한 판정을 해 멘털을 흔드는 모의 훈련도 효과를 발휘했다.


올림픽 3연패엔 2003년부터 회장사로 후원한 SK텔레콤 역할도 적지 않았다. 
SK텔레콤이 펜싱 경기력 향상과 저변 확대를 위해 쓴 지원금은 300억원에 이른다. 
국제 그랑프리 대회를 매년 1~2개 개최하고, 해외 훈련과 국제 대회 출전을 지원하면서 펜싱 국제 경쟁력이 크게 향상됐다는 분석이다.


☞사브르·플뢰레·에페

펜싱은 플뢰레·에페·사브르로 나뉜다. 
사브르(Sabre)는 머리와 양팔을 포함한 상체만 공격할 수 있다. 총 길이 105㎝, 날길이 88㎝, 무게 500g 칼 앞날 전체와 뒷날 3분의 1부분으로 찌르기와 베기가 모두 가능하다. 
플뢰레는 오직 검 끝으로 몸통을 찔러야 득점이 인정되며, 에페는 검 끝으로 몸 전체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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