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8일 ‘임신 32주 전 태아의 성별을 의사가 임부나 그 가족에게 알려주면 안 된다’는 내용의 의료법 20조 2항에 대해 위헌(違憲) 결정을 내렸다. 
앞으로는 임신 32주 전이라도 예비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법적 제약 없이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위헌 결정을 받은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날 헌재는 의료법 20조 2항에 대한 위헌 여부 확인 소송에서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위헌 의견은 이영진·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형식 재판관이 냈다. 
위헌 의견에 속하지 않은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은애·김형두 재판관도 의료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다만 위헌 결정으로 해당 조항이 즉시 무효가 되면 낙태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국회가 합리적인 내용으로 법 개정을 하라는 헌법불합치(憲法不合致) 의견을 냈다.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6명은 “의료법 20조 2항은 태아의 성별을 이유로 하는 낙태를 방지하겠다는 입법 목적을 내세우면서 실제로 낙태로 나아갈 의도가 없는 부모까지도 규제하고 있는 과도한 법률”이라며 “해당 조항은 부모가 태아의 성별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본권을 필요 이상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헌법 위배”라고 밝혔다.


이번에 위헌 결정을 받은 의료법 20조 2항은 지난 2009년 개정된 조항이다. 
앞서 1987년 의료법은 임신 기간에 상관없이 의사가 태아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를 ‘전면 금지’하고 있었다. 
당시 남아 선호 사상에 따라 태아의 성(性)을 가려 출산하려는 경향이 생기면서 남녀 성비에 심각한 불균형이 벌어지자 의료법에 강력한 규제 조항을 둔 것이다. 
그러나 헌재가 지난 2008년 이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지금처럼 ‘임신 32주 전 태아 성별 고지 금지’로 완화됐다.


이에 대해 위헌 의견 재판관 6명은 “(의료법이 2009년 개정되고 15년째가 된) 현재 우리나라는 여성의 지위 향상과 함께 양성 평등 의식이 상당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국민 가치관과 의식이 변화했으며 남아 선호 사상이 확연히 쇠퇴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보건복지부의 2021년 인공임신중절 실태 조사에 따르면, 태아 성별과 낙태 사이에 유의미한 관련성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셋째 아이 이상에서도 지난 2014년부터 출생 성비(性比)가 자연 성비의 정상 범위에 도달해 있어 성별과 관련해 인위적 개입이 있다는 뚜렷한 징표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료법이 임신 32주 이전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를 태아의 생명을 직접 위협하는 행위로 보고 낙태 전 단계로 취급해 이를 제한하는 것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 위헌 의견 재판관 6명은 “의료법 20조 2항을 어긴 의사를 2년 이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는 조항이 있지만 사문화됐다”고 했다. 
헌재가 검찰에 사실 조회를 했더니 의료법 20조 2항 위반으로 지난 10년간 고발, 송치 또는 기소된 사건이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의료법 20조 2항이 존재했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임신 32주 전에도 태아 성별을 우회적으로 알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임신 11주째인 송모(34)씨는 “산부인과 의사가 예비 엄마들에게 ‘파란 옷 사세요’ ‘아기가 엄마를 닮았네요’라며 성별을 알려주고 있다”면서 “요즘 성별을 골라 낙태하는 사람들이 있겠느냐”고 했다. 
경기 용인에 살고 있는 이모(38)씨도 “아내가 임신 20주쯤이었을 때 산부인과 의사가 초음파 검진을 하면서 ‘여기 매운 게(고추) 있네요’라고 말해줬다”면서 “태아 성별을 알려주지 못하게 하는 법이 이제야 없어진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또 30년 넘게 산부인과 전문의로 근무한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예비 부모들이 아이 성별을 알려달라고 하면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을 하면서 난처한 상황에 빠졌던 의사들도 많았다”면서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이런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고 했다.(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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