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있는 A초등학교에는 2763㎡(약 840평) 규모의 수영장이 있다. 
학생들의 ‘생존 수영’ 수업 등을 위해 2013년에 지었다. 
그런데 이 학교 학생 450여 명은 지난 2022년 9월부터 근처 사설 수영장으로 ‘원정 수업’을 가고 있다. 
학교가 민간 업체에 수영장 운영을 위탁했는데 이 업체가 학교·교육청과 소송을 벌이면서 정작 학생들이 자기 학교 수영장을 이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지난달 28일 수영장 운영을 맡은 위탁 업체와 법정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서울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 
왼쪽 건물이 학교이고, 오른쪽이 수영장이다. 
이 학교 학생들은 2022년 9월부터 자기 학교에 수영장이 있는데도 외부에 있는 사설 수영장을 이용하고 있다.>

 

 


3일 이새날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이 서울교육청에서 받은 ‘학교 복합 시설 관련 소송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 있는 초·중·고교 가운데 A초교처럼 수영장을 갖춘 학교는 총 48곳이다. 
이 중 최근 3년 동안 위탁 업체와 법적 분쟁이 발생한 학교는 4곳, 소송은 7건에 이른다. 
이 뿐 아니라 업체가 학교에 약속한 사용료를 제대로 내지 않거나 업체 선정 과정에서 탈락한 다른 업체가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등 수영장 운영을 둘러싼 크고 작은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다.


수영장이 있는 한 초등학교 교장은 “학교와 업체 간 갈등으로 학교 수영장이 애물단지가 된 학교가 많다”며 “수영장을 갖고 있는 교장들은 다들 없애버리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수영장 운영 스트레스로 너무 힘들어서 정년을 못 채우고 퇴직한 교장도 있다”고 했다.


수영장 위탁 운영은 학교와 업체 간 계약으로 이뤄진다. 
위탁 업체는 학교에 연간 수억 원의 사용료를 주는 대신 학교 주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영 강습 등 수익 사업을 한다. 
다만 학교가 학생들의 수영 수업을 할 때는 무료로 수영장을 사용하도록 하는 조건이다.

 

 




A초등학교의 경우, 지난 2022년 8월 위탁 운영 업체가 바뀌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업체가 수영장 내부에 실내 골프 연습장을 설치하고, 수영장 내부를 증축한 것이 문제가 됐다. 
학교 측은 “학생 안전이 걱정된다”며 증축한 부분에 대한 원상 복구 명령과 함께 수영장 영업을 금지했다.


이에 해당 업체는 법원에 ‘수영장 사용 허가 취소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원상 복구 명령에 대해선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0월 업체가 낸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서 1년여 만에 수영장은 다시 문을 열었지만, 원상 복구 명령 취소 소송은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강남의 B초등학교는 수영장 위탁 업체 입찰에서 떨어진 한 업체가 2022년 11월 ‘업체 선정 과정’을 문제 삼으며 행정소송을 거는 바람에 1년 가까이 재판에서 다퉈야 했다.


마포구의 C초등학교와 서초구D 중학교는 위탁 업체가 학교 측에 수영장 사용료를 내지 않아 거꾸로 서울 교육감이 “밀린 사용료를 내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다들 공립이어서 교육감이 소송 당사자가 되는 것이다.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수영장 운영을 맡은 업체가 수영장 레인 중 2개를 월 900만원을 받고 임의로 임대한 사실도 드러났다. 
학교 측은 “이는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을 어긴 것”이라며 “업체에 계약 갱신을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했다”고 밝혔다. 
이 경우는 업체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 법적 분쟁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학교 수영장 위탁 운영이 끊이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데 대해 교육청 한 관계자는 “교장이나 교사들이 민간 업체와 계약하는 과정에서 분쟁의 소지가 될 만한 부분을 걸러내지 못하거나 위탁을 준 뒤 학교 측이 사후 관리를 못 해 갈등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면서 “교육청에 전담 부서를 만들어 위탁 운영 업체와 계약을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이새날 시의원은 “공공 스포츠 시설인 학교 수영장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과 지역 주민들”이라며 “교육청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24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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