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조작됐을지 모르는 사진·영상을 믿고 ‘주차 위반’ 딱지를 떼도 될까?
지난 3월 한 광역시 구청에 ‘우체국의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에 비장애인 차가 불법 주차를 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자 A씨는 자신의 자동차 블랙박스 카메라로 촬영한 동영상을 증거로 제시했다.
동영상에는 촬영 일시도 분 단위까지 기록돼 있었다.
A씨는 한 달 뒤에도 우체국 주차장에 불법 주차를 한 차가 또 있다며 다른 차를 신고했다.
<한 운전자가 차량 블랙박스 촬영 각도를 조절하고 있다.
블랙박스 영상은 각종 사건에서 흔히 증거 자료로 제출되지만, 일반인도 쉽게 사진과 영상을 조작할 수 있는 시대에 증거 인정 범위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구청 신고 처리 담당자는 A씨가 신고한 차 주인들에게 주차 위반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고, 경고만 주는 ‘계도’를 결정했다.
구청은 이 신고가 ‘증거 불충분’이어서 과태료를 물릴 수는 없다고 봤다.
구청은 “사설 카메라 앱이나 블랙박스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동영상은 카메라 설정 값을 바꾸거나 메타 데이터(해당 사진·동영상이 언제 어디서 촬영됐는지 정보를 담은 데이터) 조작 프로그램을 써서 촬영 시기를 (실제와 다르게) 변경할 수 있는데, 우리 구청이 그 위·변조 흔적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어서 증거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A씨는 구청 판단에 불복해 국민권익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했다.
권익위는 조사 끝에 A씨 요구를 받아들여, 이 구청에 “앞으로는 시민들이 일반 사진이나 블랙박스 영상, CCTV 카메라 영상 등으로 신고한 경우에도 (이를 증거로 받아들여) 과태료 부과 절차를 진행하라”고 권고했다고 11일 밝혔다.
권익위가 A씨 손을 들어준 이유는, 이 구청을 제외하고 전국 나머지 시·군·구청은 신고자가 제시한 사진·영상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따지지 않고 그대로 증거로 받아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건복지부도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 위반 단속 시에는 신고자가 제출하는 사진·영상의 종류를 한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구청은 권익위 권고를 받아들여, 앞으로는 조작 가능성을 따지지 않고 신고자가 제출한 사진·영상을 증거로 쓰기로 했다.
그러나 일반인도 쉽게 사진·영상 조작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에, 현재의 신고 처리 기준으로는 악의를 갖고 조작 자료를 만들어 신고를 넣는 사람을 가려낼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사진·영상 파일에 포함되는 메타 데이터 정보를 조작하는 앱은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권익위 관계자는 “이 사건 조사에서 신고자가 실제로 사진·영상을 조작할 가능성이 있는지는 검토하지 않았다”고 했다.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 경찰은 질서 위반 행위 신고 대부분을 ‘안전 신문고’와 ‘스마트 국민 제보’라는 모바일 앱으로 받고 있다.
신고자가 불법행위의 종류, 불법행위가 벌어진 일시와 장소를 입력하고 사진·영상 등 근거 자료를 제시하면, 담당 공무원이 이를 확인해 위반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때 신고자는 앱에 내장된 사진·동영상 촬영 기능을 이용해야 한다.
증거 자료가 조작되거나 오염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별도로 촬영한 사진·영상을 증거로 쓰려면 그 사진·영상 내에 이것이 언제 촬영된 것인지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블랙박스 영상 속 촬영 시각 숫자 표시는 효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반면 메타 데이터에 기록된 촬영 일시·장소만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법원에서는 내용이 조작되지 않았다는 것이 ‘디지털 포렌식’ 등을 거쳐 엄밀하게 확인된 디지털 자료의 증거능력만을 인정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의 과태료 부과 시 사진·영상 인정 기준은 신고자가 자료를 조작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든 기준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며, “그렇다고 많아야 몇십만원짜리 과태료 부과 사건에까지 ‘포렌식을 거친 자료만 인정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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