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 연계 ELS(주가연계증권)에서 내년 상반기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불거진 가운데, 주요 은행들이 이 상품 전체 판매액 중 거의 절반을 60대 이상 고령층에게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엔 90대 이상 초고령자에게 판매한 91억원도 섞여 있다.
금융 당국은 수수료 수입 올리기에 급급했던 대형 은행들이 은퇴한 고령자들에게 초고위험 파생 상품인 ELS를 불완전 판매한 경우가 상당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객에게 금융 상품의 투자 위험성을 제대로 안내하지 않고 가입을 권유하는 불완전 판매가 입증될 경우 은행은 고객 손실의 일부를 배상해야 한다.
13일 국회 정무위원회 오기형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홍콩H지수 연계 ELS 판매 잔액은 11월 말 기준 13조5790억원이다.
이 중 60대 이상 고객에게 판매된 것이 6조4541억원으로 47.5%였다.
60대(60~69세) 고객은 전체 연령대 중 홍콩H지수 연계 ELS를 가장 많이 보유(32.1%)하고 있었다.
그다음이 50대(30.8%), 40대(14.1%), 70대(13.8%), 30대(4.8%) 순이었다.
판매 잔액이 아닌 고객 수로 집계해 보면 60대 이상이 6만2550명으로 이 상품 보유자 중 40.9%를 차지했다.
60대 이상 고객 1명당 평균 1억318만원꼴로 가입한 셈이다. 60대 미만 고객들의 1인당 평균 투자액(7869만원)보다 30%가량 많다.
은퇴 자금을 안정적으로 굴릴 목적으로 예·적금에 돈을 넣듯 목돈을 집어넣은 경우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달 초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ELS 상품 구조에 대해 파는 사람조차도 어떤 상품인지 모르고 판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부분을 조사해서 불완전 판매인지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9년 우리·하나은행에서 판매한 해외 금리 연계 DLS(파생결합증권)에서 4000억원대 투자 손실이 일어났을 때도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은 고령자에 대한 불완전 판매였다.
당시 금융감독원 조사에 따르면, 이 상품 개인 투자자 3004명 중 60대 이상이 1462명으로 절반에 육박했다.
금감원 조사에선 귀도 들리지 않는 구순의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등 고령층에 대한 불완전 판매 사례가 상당수 드러났다.
이후 금융 당국은 고령자에 대한 고위험 파생 상품 판매 관리·감독 강화에 나섰지만, 은행권의 불완전 판매가 근절되진 않은 것이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1941년생 유모(82)씨는 2021년 1월 병원비로 남겨둔 돈 5000만원을 예금이나 적금에 넣으려고 은행을 찾았다가 문제의 ELS에 덜컥 가입하게 됐다.
당시 은행 직원은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괜찮다”며 투자를 권했다고 유씨 가족들은 밝혔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후 은행에 찾아가 녹취를 다시 들려달라고 했더니 유씨는 중간중간 “모르겠어, 전혀 모르겠어”라고 말했던 것이 확인됐다. 그럼에도 가입이 완료돼 50% 넘는 손실을 볼 위기에 처했다.
이번 ELS 손실이 현실화하면 역대 최대 규모 투자 손실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
2019년 DLS 사태 때는 3000여 투자자가 4024억원을 손실 입고 58.4%를 배상받았다.
연이어 터진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사모 펀드 불완전 판매는 피해액이 5조159억원에 달했는데, 올해 2월 말 기준 47.5%인 2조3838억원이 배상됐다.
ELS는 예금보다 2~3배 높은 금리에 6개월 조기 상환 매력으로 ‘국민 재테크’ 수단으로 오랜 시간 각광받아 왔다.
사모 펀드는 기업이나 일부 고액 자산가가 고객층이었던 반면, ELS는 일반 서민부터 부유층까지 다양하다.
특히 전체 판매액의 절반 이상이 보수적 투자 성향의 고객이 대부분인 은행 창구를 통해 팔려나갔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 클 전망이다.
은행들은 예·적금뿐만 아니라 증권사가 만든 ELS·DLS 같은 고위험 파생 상품과 자산운용사가 만든 각종 주식·채권형 펀드도 고객들에게 판다.
이자 장사만 할 게 아니라 수익을 다각화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판매 계약이 체결되는 시점에 판매액의 1% 남짓한 수수료를 얻는다.
13조원어치 ELS를 팔았다면 1300억원 정도의 판매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시중은행 지점장 출신 A씨는 “은행 지점에선 ELS 같은 신탁 상품을 많이 판 직원일수록 높은 고과를 받아 승진에 도움이 된다.
은행들은 파는 순간 이미 수익을 얻고 끝이기 때문에 상품에서 손실이 나도 상관이 없다. 손실이 나면 고객만 손해 보는 구조”라고 전했다.
한 금융지주 임원은 “이자 장사 비율을 줄이라고 해서 다른 돌파구를 찾으려 이런 파생 상품을 판 것인데, 또 불완전 판매 문제가 생겨 난감할 따름”이라며 고개 숙였다.(231214)
☞ELS
ELS(주가연계증권·Equity Linked Security)는 주가지수 등의 등락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금융 상품이다.
주가가 하락해도 일정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면 약속한 수익을 받을 수 있지만, 주가가 범위를 벗어나 폭락하면 원금을 잃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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