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된 딸을 둔 서울 양천구 이모(35)씨는 휴대전화를 쓸 때마다 아이가 빼앗으려 달려들어 고민이다.
아이를 봐주는 친정어머니가 유튜브로 캐릭터 영상을 보여준 뒤 벌어진 일이다.
‘보여주지 말라’고 하자 어머니는 “휴대폰 안 보여주면 (나는)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못 먹는다”고 했다.
최근 영·유아가 스마트폰·태블릿 PC 등 디지털 기기를 너무 빨리 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한국교원대의 디지털 이용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유치원에 다니는 만 3~5세 유아의 54.3%가 24개월 이하에 디지털 기기를 처음 접한 것으로 조사됐다.
유아 둘 중 한 명이 두 돌 전부터 스마트폰 등에 노출된 것이다.
이 중 11.8%는 ‘0~12개월’이라고 답했다. ‘디지털 돌잡이’인 셈이다.
아이들이 처음 접한 디지털 기기는 태블릿PC(39.1%)와 스마트폰(33.6%), 스마트 TV(23.7%) 순이었다.
영어나 동요를 가르치려고 손에 쥐여준다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가사로 바빠서’ ‘양육 중 잠시 휴식을 위해’ ‘이동·외식 때 아이 통제를 위해서’ 등이라고 답했다.
아이 주의를 잠시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경기도 수원의 장모(34)씨는 “외식할 때, KTX 같은 대중교통을 오래 탈 때 아이가 계속 울고 보채면 주변 눈치가 보여 휴대폰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디지털 돌잡이’는 영·유아 뇌 발달에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집중력·논리력과 관련 있는 ‘전두엽’이 덜 발달하고, 시각적 자극을 처리하는 ‘후두엽’만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뇌의 균형적 발달에 가장 중요한 부모와 대화, 눈 맞춤 같은 기회도 놓친다.
영·유아 때 과도한 디지털 기기 노출은 사회성 발달에 악영향을 준다.
김성구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2013~2019년 사회성 발달 지연으로 치료받은 영·유아 96명을 분석했더니 ‘발달 지연 그룹’의 95.8%가 만 2세 이전에 처음 디지털 기기를 접했다.
63.6%는 평균 시청 시간이 2시간을 넘었다.
사회성 발달 지연이 없는 영·유아 101명은 2시간 넘게 보는 비율이 18.8%에 불과했다.
김 교수는 “인간 뇌는 만 5세까지 기본적인 기능이 발달하고 어느 정도 완성되는데, 이때 언어·인지 능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 손상이 남으면 성인이 되고 나서 집중력과 사회성이 떨어지고 지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뇌 발달이 중요한 시기에 강한 시각적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참을성이 부족하고, 충동적인 성격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디지털 기기 사용은 영·유아의 언어, 인지 발달에도 영향을 준다.
발달 지체나 자폐 의심 진단을 받은 아동에게 의료진이 ‘디지털 기기 끊기’를 가장 먼저 권하는 이유다.
이태엽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부모가 동영상을 틀어 놓고 자기 일을 하면, 아이는 발달에 필요한 자극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것”이라고 했다.
영·유아 때 휴대전화만 보고 있으면 신체 발달에도 악영향이 있다.
미국소아과학회는 “24개월 미만 아동은 어떤 종류의 디지털 기기에도 노출을 삼가야 한다”고 권고했다.
문진화 한양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부모가 먼저 아이 앞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며 “주변 사람들도 아이가 울거나 보챌 때 눈치 주지 말고 조금 더 배려했으면 한다”고 말했다.(2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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