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광주광역시에 사는 이모(28)씨는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갑자기 설사와 구토 증상을 보여 24시간 하는 인근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병원에서는 ‘범백혈구 감소증’이라는 바이러스성 장염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병원 관계자는 “치사율이 굉장히 높다. 일주일간 입원해 치료해야 한다”며 100만원쯤 비용이 든다고 했다. 
생각보다 너무 높은 비용에 놀란 이씨는 인근 또 다른 병원에 갔다. 
거기서도 똑같은 진단이 나왔는데, 이 병원은 “약을 먹으면서 집에서 잘 간호해 주면 된다”고 약 처방비 4만원만 내라고 했다. 
그는 “반려동물 병에 대한 정보가 없는 일반 사람들은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제대로 된 진료비인지 알 길이 없어 답답했다”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은 606만가구로, 국내 전체 가구의 약 25%다. 
이들은 최근 “이러다 동물도 부자만 키우겠다”고 푸념한다. 
고물가 속 동물병원 진료비나 반려동물 관련 물품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탓이다. 
특히 동물이 아플 때 병원에 갔더니 비쌀뿐만 아니라, 병원마다 진료비가 천차만별이란 것에 대한 불만이 크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13살 요크셔테리어를 키우는 직장인 김모(58)씨는 작년 말 반려견의 유선종양 및 자궁근종 제거, 중성화 수술 등 3가지 치료를 받는 데 280만원을 썼다. 
신촌에 사는 김씨는 조금이라도 수술비를 아끼려고 경기 일산으로 반려견을 안고 가 ‘원정 수술’을 받았다. 
신촌의 유명 대형 동물병원은 김씨에게 “수술 3개를 하는 데 400여 만원이 든다”고 했지만 수소문한 끝에 이 병원에서 280만원이면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6살 베들링턴테리어를 키우는 대학생 양모(24)씨도 지난 2021년 8월 반려견이 피부염 증상을 보여 수의사 10여 명이 근무하는 강남의 대형 동물병원을 방문했다. 
이 병원은 항생제 주사와 연고를 처방하는 데 23만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근처의 소형 동물병원에서는 단 6만원에 같은 진료와 처방을 해줬다. 
경기 성남시에 사는 대학생 김모(24)씨도 지난해 6월 슬개골 탈구 수술 가격을 알아보려 서울과 경기 지역 동물병원 30군데의 수술비 정보를 검색했다. 
김씨는 “성남시 병원은 150만원, 서울 마포구는 310만원으로 가격이 너무 차이가 컸다”고 했다.

 


반려인들을 상대로 추가 진료나 수술을 받으라고 은근히 압박하는 경우도 많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A(51)씨는 2021년 말 키우는 ‘비숑 프리제’종(種) 강아지가 산책하다 넘어져 앞다리가 부러져, 동작구의 한 병원에서 200만원을 내고 뼈를 고정시키는 플레이트(금속판+철심) 수술을 받았다. 
그 뒤 수의사가 “플레이트를 제거하지 않으면 1만분의 1 확률로 암이나 염증이 생길 수 있다”며 은근히 수술을 종용했다고 한다. 
A씨는 “겁을 주는 게 의심스러워 제거 수술을 받지 않았는데 여태껏 별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전문가와 소비자 단체 사이에선 이 같은 일이 일어나는 이유로, 사람 진료와 같은 ‘표준 수가제’가 없기 때문이란 지적이 있다. 
사람에 대한 의료 행위는 1977년 의료보험 도입 때부터 행위별 수가제(fee-for-service)를 채택하고 있다. 
의료 서비스(진료 행위나 약제 등)에 대해 종류별로 일정한 표준 진료비를 정해둔 것을 말한다. 
현재 비슷한 규모의 병·의원에서 진료비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동물 진료 행위에는 현재 이런 제도가 없다. 
공정위가 지난 1999년 “자유 경쟁 원칙에 위배”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수의사 사이에서도 “진료비 하향 평준화로 진료 질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반대가 많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수년간 고무줄 진료비에 대한 문제 지적이 있었다”면서 “소비자들이 특정 질병에 대해 치료비가 얼마나 나올지 예측할 수 있게 해 심각한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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