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왕복 6차로. 
80대 여성 운전자 A씨가 몰던 SUV가 도로변 아파트 담장을 들이받았다. 
A씨의 차는 애초에 이 담장에서 약 100m쯤 떨어진 한 골목에서 좌회전을 하다가 다른 차량과 충돌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6차로를 가로질러 질주하더니, 길 건너편의 아파트 담장에 부딪힌 것이다. 
경찰은 A씨가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 페달로 착각한 것을 사고 원인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부산 해운대구의 한 빌라 주차장에서 70대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인근 차량과 가드레일을 잇따라 들이받고 2층에서 1층 차로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길에 사람이 없어 운전자 외에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지난 19일 부산 해운대구의 한 빌라 주자창에서 70대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울타리를 들이받고 2층에서 1층으로 추락한 모습.>

 

 

최근 65세 이상의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가 잇따르며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국내 교통사고는 2014년 22만3552건에서 작년 20만3130건으로 약 9% 줄었다. 
하지만 가해자가 65세 이상인 고령 운전자의 사고는 같은 기간 2만275건에서 3만1841건으로 57% 증가했다. 
전체 사고 중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낸 사고 비율 역시 이 기간 9%에서 16%까지 늘었다. 
국내 교통사고 6건 중 1건이 고령 운전자가 낸 사고라는 뜻이다.


사회 전반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만큼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국민의힘 김웅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운전면허증 소지자는 2018년 307만650명에서 작년 401만6538명으로 늘었다. 
이미 고령 운전자 400만명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고령 운전자 문제에 대해 정부, 경찰이 안이하다는 지적이 많다.


경찰은 고령 운전자가 사고를 내는 원인으로 인지능력 저하에 따른 운전 조작 미숙, 위기 상황 대처 능력 부족, 각종 질환으로 인한 운전 중 심장마비 등을 꼽는다. 
이런 점 때문에 정부는 ‘자진 면허 반납제’를 운영하고 있다. 
지자체별로 면허를 반납한 60~75세 운전자에게 10만~20만원 상당의 대중교통카드나 지역 화폐를 제공하거나 시내버스 무상이용권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호응이 낮다. 
전체 고령 운전자 가운데 면허 반납 비율이 약 2%에 그치고 있다. 
인센티브가 일회성인 데다 보상 수준이 미미하다는 반응이 다수다. 
예산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은 지자체도 많아 “예산이 조기에 소진돼 반납할 수 없었다”는 운전자도 여럿이다. 
또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망이 촘촘히 갖춰져 있지 않은 지역에서는 자가운전을 하지 않을 경우 고령자의 이동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경북 김천에 사는 박모(67)씨는 “평생 몰아왔던 차를 교통비 몇 십만원 받고 내놓으라는 말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며 “성의 있는 보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고령 운전자로 인한 대형 사고가 나기 전에 촘촘한 대안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현재 자진 면허 반납 제도를 보면 도시보다 시골의 면허 반납률이 낮은데 몸이 아프거나 급한 용무가 생겼을 경우 운전하지 않으면 이동이 어렵다는 점 때문”이라며 “교통 소외 지역에 이른바 ‘100원 택시’나 고령자 전용 콜버스 등을 확대하는 대책을 동반해야 한다”고 했다.


고령자에 대한 적성검사 및 교통안전교육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는 65세 이상에 대해서는 5년, 75세 이상은 3년 주기로 이 검사 등을 실시한다. 
실제 미국 일부 주나 독일 등에서는 이런 점을 반영한 ‘조건부 운전면허제’를 도입한 곳도 많다.


독일에서는 야간 시력이 부족한 이에게는 주간 운전만 허용하고, 장거리 운전이 어려운 질병을 가진 경우는 자택 기준 일정 거리 내에서만 운전 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 
경찰도 오는 2025년쯤 이 제도를 도입하는 걸 검토 중이다. 
VR(가상현실) 기기 등을 활용해 고령 운전자의 야간 및 고속도로 주행 등 운전 능력을 평가하고 전문가 의견도 반영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조준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조건부 운전면허 대상자를 어떻게 분류해낼 것인지가 관건”이라며 “고령화 속도가 빠른 만큼 제도 도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했다.(2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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