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밤 프랑스 파리 센강 인근의 콩방시옹가(街)에서 마주친 미국인 관광객 애버리(29)씨는 예약한 호텔을 찾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정부 지침으로 상업 시설과 길가 조명이 대거 꺼진 탓에 호텔 간판조차 눈에 잘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한국과 달리 간판에 네온사인이나 형광등을 거의 쓰지 않아 주변 조명이 없으면 호텔조차 알아보기가 어렵다. 
그는 “에너지난으로 에펠탑 조명도 일찍 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어둡게 하고 지낼 줄은 몰랐다”고 했다.

 

 

<지난 8일 밤 서울 강남역 일대 상가 간판들이 환하게 켜져 있다. 
자정이 임박한 시간이지만 영업을 마친 업소와 병원들도 간판 조명을 끄지 않았다(사진 왼쪽). 
프랑스 파리시는 오전 1시였던 에펠탑 조명 소등 시간을 전날 오후 11시 45분으로 1시간 15분 당겼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조치 중 하나다(사진 오른쪽).>

 


13일 리오넬 메시가 뛰는 파리 생제르맹 축구단의 경기가 열리는 ‘파르크데프랭스’ 경기장은 “조명 켜는 시간을 기존 3시간 전에서 1시간 30분 전으로 늦췄으니 경기장에 너무 일찍 오지 말라”고 공지했다. 
이 역시 에너지 절감을 위한 조치다. 
독일 베를린도 최근 교통 안전용 조명을 제외한 공공건물과 기념물의 조명을 모두 금지했다. 
이 때문에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과 TV 타워의 조명 상당수가 꺼졌다. 
말 그대로 ‘한 등 끄기’ 운동이 벌어지는 셈이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유럽의 노력은 눈물겨운 수준이다. 
프랑스는 난방과 조명 에너지부터 단속하고 나섰다. 
우선 아파트의 중앙난방이 들어오는 기간이 짧아졌다. 
지난해까지는 10월 15일부터 난방이 들어왔지만 올해는 11월 1일부터 시작됐고, 종료 시점도 3월 말로 보름 당겼다. 
의료 시설과 보육원 등을 제외한 모든 건물에서 올겨울부터 난방 온도를 19도 이하로 제한했다. 
정부 공공시설은 의무이고, 호텔·카페·식당 등에도 강력히 권장한다. 
호텔의 경우 사람이 없는 공간은 17도 이하로 유지하고,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는 내외부 조명을 꺼야 한다. 

상점과 수퍼마켓, 쇼핑센터의 난방은 15~17도로 유지하고, 조명의 수나 밝기를 줄여 전력 소비를 30% 줄이도록 했다. 
또 폐점 후에는 조명이 들어간 광고나 네온사인은 모두 끄도록 강제했다. 
위반하면 최대 1500유로(약 2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파리 공항공단 관계자는 “항공기가 지상에서 활주로로 이동할 때 엔진을 1개만 쓰라는 지침까지 내려왔다”고 했다.

 

 




일본 정부도 올 12월부터 3월까지 기업·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동전기 절전’을 정식 요청하기로 했다. 
겨울 절전 요청은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가동 중단 여파가 이어졌던 2015년 이후 7년 만이다. 
지자체는 청사 내 엘리베이터·조명 가동 숫자를 줄이고, 각 기업에 사무실 소비 전력 1% 줄이기 등을 요청했다.


독일은 공공시설의 실내 난방 온도를 제한한 것도 모자라 복도·로비·창고의 난방을 아예 법으로 금지했다. 
개문(開門) 난방도 금지다. 위반 시 수백유로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공공건물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화장실과 샤워실의 온수를 모두 끊게 했다. 
연방 경제기후보호부가 나서서 “샤워는 5분만, 절수용 샤워기를 쓰자”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이렇게 하면 온수를 만드는 데 드는 에너지가 30% 절약된다. 
독일 4100만 가구가 모두 참여하면 11.3TWh(테라와트시) 분량의 천연가스가 절감된다는 수치까지 내놨다. 독일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량의 약 2.6%에 달한다. 
또 냉장고의 냉장실 온도까지 기존 4~5도에서 7도 정도로 높여 쓰라고 권장하고 있다. 
가스 난방을 하는 아파트나 건물은 불필요한 난방을 줄이기 위해 2024년까지 무조건 난방 자동 조절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각종 보조금도 준다. 
프랑스는 수도관과 난방관에 단열 시공을 하면 1m당 30유로(약 4만1000원)씩 지원금을 준다. 
영국의 민간 전력사 내셔널그리드사는 전력 피크 시간대에 전기 사용을 자제하면 하루 최대 10파운드(약 1만5600원)를, 옥토푸스 에너지사는 1kWh(킬로와트시)를 절감할 때마다 4파운드를 요금에서 돌려준다.(2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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