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2일 “디지털 인재를 양성하겠다”면서 2025년부터 초·중·고교의 ‘코딩’(컴퓨터 언어) 교육을 필수화하고 디지털 수업 시간을 2배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해, ‘코딩 선행학습’ 붐이 일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미 사교육 시장에서 코딩 학원들은 정부 조치를 반기면서, 학부모 문의 전화가 크게 늘었다는 반응을 보인다.
<지난 24일 서울의 한 코딩학원에서 유아반 학생 2명이 ‘블록식 코딩 수업’을 받고 있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의 한 코딩(컴퓨터 언어) 학원.
만 6살 유치원생 2명이 블록식 코딩 교육을 배우고 있었다.
노트북에 있는 코딩 프로그램으로 블록에 여러 색깔의 조명이 순서대로 들어오게 하는 내용이다.
한 학부모는 “블록을 통해 코딩을 쉽게 배우게 하는 게 요즘 대세”라고 전했다.
최근 몇 년 새 4차 산업혁명이나, IT 개발자 구인난 등이 알려지면서 초등학생은 물론 미취학 아동들을 코딩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가 이미 적지 않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미취학 아동을 기준으로 수업료가 일주일 4번에 15만~25만원 안팎이다.
교재·교구 종류 등에 따라 월 50만~60만원에 달하기도 한다.
정부 발표 이후 젊은 부모들 사이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코딩 학원을 보내야 하느냐며 선행학습 부담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코딩이 뭔지 전혀 모르는 채 학교에 갔다가 아이가 뒤처져 스트레스를 받을까 걱정”이라는 것이다.
지난 1997년 초등학교에 영어교육이 정규 과정으로 들어온 이후 영어 조기 교육이 강조되면서 시작된 영어유치원 열풍이 이제는 ‘영코(영유아 코딩)’ 열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의 한 IT 업체 개발자로 일하는 최모(33)씨는 “8살, 4살짜리 두 딸이 있는데 초·중·고 필수가 되면 코딩이 분명히 내신 성적에 포함될 것”이라며 “코딩을 조기에 배우는 게 앞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사교육비 부담이 큰데, 코딩 학원비가 추가로 더 나가게 생겼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서 7살·5살 아이 둘을 키우는 정모(45)씨 역시 “아무리 디지털 시대이지만 모두가 코딩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필수라고 밀어붙이는 게 불만스럽다. 지금도 학교에서 영어나 수학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지 않느냐”고 했다.
반면 전국 곳곳의 학원가는 ‘제2의 코딩붐’이 돌아올 것이라며 들떠 있다.
지난 2018년에도 초·중·고 소프트웨어(SW) 교육이 필수화되고 IT 기업들이 인기를 끌면서 코딩 사교육 시장이 한 차례 활황이었는데, 이번에도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서울 송파구의 한 코딩학원 관계자는 “지난 2월 개원 이후 현재 미취학 아동과 초·중등생 총 80명이 등록해 수업을 받고 있다”며 “정부 발표 이후 등록 문의 전화가 평소보다 하루에 4~5통은 더 오고 있다”고 했다.
경남 진주의 한 코딩학원 원장인 민모(41)씨도 “평소 학부모 문의 전화가 한 주에 1~2건 정도 오다가 22일 발표 이후 4일 만에 10건의 등록 문의가 왔다”고 말했다.
학원가에서는 정부 기대와 달리 코딩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칠 교사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대로 코딩 교육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고, 그 여파로 사교육 시장이 수혜를 볼 수 있다는 구체적인 전망까지 나온다.
경기 남양주의 한 코딩학원 원장인 신모(57)씨는 “이미 지금도 코딩을 제대로 가르칠 만한 인력이 전무하다시피 하다”면서 “공교육 코딩 필수가 된다 해도 이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코딩 교육이 학생들을 디지털에 친숙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빨리 발표해 학부모들의 불안을 잠재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현철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는 “코딩 사교육 시장을 ‘나 몰라라’ 놔두면 과도한 선행학습이 횡행할 수 있으니 향후 정부가 초·중등 코딩 교육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세밀히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안성진 성균관대 컴퓨터교육과 교수는 “학교에서 디지털 교육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도 필요한 만큼 코딩을 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2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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