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길
           노중석

 



1.
꾸물거리던 벌레 한 마리
이승을 떠나가고


이승과 저승 사이
벌레구멍 하나 생긴다


첩첩이 고요만 쌓이는
늦가을 빈 집 뒤뜰


2.
나뭇잎 다 뒤져도
가는 길을 못 찾았나


그 날 떠난 바람
허공에 와 다시 운다


하늘의 권속이 되어
별은 저리 빛나는데

 




 .....................
떠나는 소리로 빈자리들이 커지고 있다. 
낙엽들 버석대며 떠나는 길 밑도 유심히 보면 벌레들 자취가 더러 밟힌다. 
자그만 벌레들도 우리네 공원이며 뒤뜰에 와서 한생 잘 파고 먹고 놀다 제 길 떴나 보다. 
그렇게 지구에 깃들어 먹고살다 무엇인가 남기고 떠나는 생명들, '첩첩이 고요만 쌓이는' 늦가을의 뒤뜰 또한 자잘한 생명들의 한살이 삶터요 놀이터였던 것이다.


그럴 때 '이승과 저승 사이'에 생긴 '벌레구멍'들! 
무릇 생명은 그런 구멍으로 오고 또 가려니 벌레구멍은 생명의 통로이기도 하다. 
지렁이가 다니며 구멍을 많이 낼수록 흙도 기름지게 되니, 이 모두 생명의 모듬살이 이치겠다. 
그렇게 보면 별들도 우주의 구멍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별들을 생명 구멍이라고 여긴다면 별이 빛나는 밤의 오랜 낭만은 바래겠지만―. 
- 정수자<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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