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꽹과리·장구·북 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란색 상의에 노란색 모자를 맞춰 쓴 20여명의 농악단이 운동장을 돌며 농악을 연습하고 있었다.
멀리서 볼 땐 병아리 같은 아이들인가 싶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60세를 훌쩍 넘긴 할아버지·할머니들이다.
교실 안에서도 노인들이 모여 천연 비누를 만들고, 다듬이를 두드리고, 도시락을 만들고 있었다.
지난달 22일 경북 청송군 진보면 한 초등학교 건물에서 본 풍경이다.



이곳은 원래 부곡초등학교 자리였다.
하지만 2008년부터 학교 교훈이 걸리는 건물 정면에 '청송시니어클럽'이라는 간판이 달렸다.
부곡초도 1980년대엔 전교생이 500명 가까이였다.
그런데 지역 인구 감소와 저출산 현상이 겹치면서 학생 수가 급격히 줄자 결국 1993년 폐교했다.
대신 지금은 노인 교육, 노인 일자리 창출을 담당하는 시니어클럽이 들어서 현재 약 1500명의 노인이 활동 중이다.
이 클럽 황진호 소장은 "일자리가 없고 자녀 교육이 힘들다는 이유 등으로 청송군 젊은 사람들이 점차 떠나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해졌다"면서 "올해 청송군 전체 인구의 32%가 65세 이상 시니어"라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경북 청송군 진보면, 폐교를 개조해 노인 일자리 양성 기관으로 탈바꿈한 ‘청송 시니어클럽’에서 노인 20여 명이 농악 연습을 하고 있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부곡초등학교는 학생 인구 감소로 1993년 폐교됐다>


교육부에 따르면 부곡초처럼 폐교한 초·중·고는 1982년부터 올 3월까지 전국적으로 3726곳이다.
작년 현재 전국 중학교 수(3209곳)보다 더 많은 학교가 사라진 것이다.
1983년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인구 대체 수준인 2.1명 이하로 떨어진 해다.
시도별로는 전남이 806곳으로 가장 많고 경북 704곳, 경남 557곳, 강원 450곳, 전북 322곳, 충남 258곳, 충북 237곳 등이다.
정부는 1990년대 말부터 소규모 학교 통폐합을 추진했다.
이전에는 시도교육청에 맡겨두었지만 소규모 학교에서 '복식 학급'(학년이 다른 학생들을 한 교사가 가르침)을 운영하는 등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아이들 사회성 발달에도 좋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가 나선 것이다.


 
문 닫는 학교가 속출하면서 이번엔 폐교 활용 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방치하면 흉물이 되기 때문이다.
폐교 3726곳 가운데 2371곳은 매각했고, 나머지 1355곳 중 947곳(70%)이 ▲체험 학습장 등 교육용 시설(229곳) ▲지역 특산물 가공장 등

소득 증대용(249곳) ▲교육청 자체 사용(242곳) ▲공예품 전시장 등 문화 시설(82곳) 등으로 탈바꿈했다.
청송시니어클럽처럼 노인들이 이용하는 사회복지 시설 간판을 단 곳도 상당수다.
매각이나 용도 전환 등이 마땅치 않아 방치된 폐교도 전국적으로 408곳이나 된다.




폐교는 '마을 쇠락'을 가속화한다.
학교가 없으니 젊은이들이 오지 않고, 그나마 살던 젊은 층도 교육을 위해 다른 마을로 옮기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폐교를 극구 반대하는 이유다.
경남 사천시 사남면 초전리가 고향인 문경태(64) 전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의 모교(초전초)는 1999년 폐교됐다.
산업화·저출산 등으로 "한때 2000명이던 마을 주민이 지금은 500여명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학생 수가 줄자 사남면 학교 4곳 중 초전초를 비롯한 3곳이 문을 닫았다. 모교는 사라졌어도 동창회는 매년 4월 중순 열린다.
문 전 실장은 "잡초가 자란 학교 운동장에 텐트 치고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잔치를 연다"면서 "폐교한 지 오래돼 가장 어린 동창이 40대"라고 했다.
"굉장히 서글픈 거 있죠. 동창회라는 게 모교 가서 후배한테 장학금도 주고 스승의 날엔 선생님께 꽃도 달아드리고, 다 같이 '모교 발전을

위하여' 외치며 건배도 해야 하는데, 격려할 후배나 선생님이 아무도 없으니까요." (17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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