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통해 사진에 상상력을 더해보세요
입력 : 2011.10.27
은유의 도구, 그림자
- ▲ ▲렌즈 135㎜₩셔터스피드 1/125 sec₩조리개 f/5.6₩감도 ISO 100.
저자인 로브 쉐필드(Sheffield)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공테이프에 음악을 서로 녹음해 들려주며 마음을 나눴던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끝까지 옆에서 지켜주겠다…' 이런 얘기는 입으로 하기엔 참 민망하고 멋쩍다.
저자는 대신 음악을 들려준다. 하고 싶은 말을 음표에 담아 노래로 공테이프를 채워넣고 아내에게 조용히 건네주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진도 때론 이런 공테이프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사진은 상당히 직접적인 매체다. 신문에 실리는 보도사진은 특히 그렇다. 육하원칙의 정보가 꽉꽉 이미지로 들어간다.
빵 만드는 명장을 찍을 땐 대개 그가 빵을 굽는 모습을 찍고, 오래된 숲을 찍을 땐 그 숲이 얼마나 울창하고 광활한지 보여주기 위해 나무를 올려다보는 사람을 작게 넣는 경우가 많다.
친절하긴 하지만 때론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몇 마디의 말을 음악으로 대신하듯, 사진에도 때론 은유(隱喩)가 필요한 것이다.
은유의 도구, 그림자는 바로 이렇게 사진을 통해서 살짝 '돌려 말하고 싶을 때' 찍으면 좋은 피사체가 아닐까.
신혼여행지를 예로 들어보자. 리조트 앞에서 커플 티셔츠를 입고 서 있는 부부 사진은 너무 전형적이지만 두 사람이 다정하게 걷는 모습의 그림자를
찍으면 사진이 제법 시적(詩的)이 된다.
때에 따라선 직접적 묘사보다도 효과적일 수가 있다.
2008년 11월 찍은 이 경복궁의 나무 그림자 사진도 정보를 강조하기보단 느낌을 살리기 위해 찍은 사진이다.
경복궁에 뿌리내린 오래된 나무들을 찍는 게 주제였다. 그냥 궁 안에 나무들이 서 있는 모습을 찍는 건 지나치게 설명적이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고민하면서 궁을 둘러보다 돌담에 겹쳐진 나무 그림자를 보았다.
돌담에 새겨진 옛 문양과 나무 그림자. 나무를 직접 찍는 것보단 이 그림자를 찍는 것이 흘러간 시간과 오랜 역사를 서정적으로 표현하기에 더
적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자가 기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계속 주위를 돌다 오후 5시 무렵 찍은 기억이 난다.
그림자는 해가 길게 늘어지는 늦은 오후에 찍으면 좀 더 극적이다. 그림자가 어디에 겹쳐지는지도 유심히 봐야 한다.
그림자의 질감과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이나 설명하고 싶은 정보를 때때로 그렇게 그림자에 압축해 보자. 형태는 단순해지고 사진은 강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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