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남편


 
남녀가 늙어서 꼭 필요한 것을 소개하는 얘기가 한때 세간에 나돌았다.

 

“여자에게는 첫째 돈, 둘째 딸, 셋째 건강, 넷째 친구, 다섯째 찜질방이다.

남자에겐 첫째 아내, 둘째 마누라, 셋째 집사람, 넷째 와이프, 다섯째 애들 엄마다.”

 

여자가 늙으면 남편은 없어도 되는 반면, 늙은 남자에게 아내는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우스갯말이지만 노부부가 서로 배우자를 필요로 하는 정도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1990년대 중반 ‘간 큰 남자 시리즈’가 유행하면서 대중가요 ‘간 큰 남자’가 히트한 적이 있다.

세상이 변한 줄 모르고 아내에게 겁없이 행동하는 이 시대의 남편을 풍자한 것이다.

 

가사 속에 나오는 간 큰 남자의 유형은:-

‘아내에게 전화 건 남자가 누구냐고 물어보는 남자’

‘아내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남자’

‘향수 뿌리고 외출하는 아내 뒷모습을 미심쩍게 흘겨보는 남자’

‘매일 아침 식탁에 앉아 밥 달라고 하는 남자’

‘벌어오는 것도 시원찮으면서 반찬 투정하는 남자’

‘아내가 외출하고 돌아오면 어디 갔다 왔냐고 묻는 남자’

‘밀린 빨래와 설거지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비디오만 보려는 남자’ 등이다.

그동안 간 큰 남자 시리즈는 진화를 거듭해왔다.

‘본가에는 갈비 한 짝, 처가에는 정종 한 병 사가는 남자’

‘부부 동반 모임에 나가서 아내 기죽이는 남자’ 등이 더해졌다.

뭐니뭐니해도 간 큰 남자 유형의 압권은 ‘간 큰 남자 시리즈가 뭔지도 모르는 남자’가 아닐까 싶다. 흥미로운 사실은 간 큰 남자 시리즈를 즐겨 얘기하는 사람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란 점이다.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로 크게 웃는 이면에는 남편의 권위를 잃어가는 현실을 서글퍼하면서도 가정에서 아내에게 복종을 바라며 왕노릇하려는 자세를 반성하는 의미가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 여성의 71.8%가 ‘평균수명이 늘어나면 여성이 남편을 돌봐야 하는 기간이 길어져 노부부 간 갈등이 발생할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고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20세 이상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남성의 동의율도 66.4%나 됐다. 많은 여성이 ‘늙은 남편’을 돌보는 일을 부담스러워하고 있고, 남성도 대체로 그런 사정을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갈등 해소법은 간단하다. 남편이 생각을 바꿔 아내의 부담을 덜어주면 된다.


<경향닷컴 / 노응근 논설위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