힝기스 이후 세계 테니스 계는 '여제'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 누구도 과거 힝기스나 나브라틸로바, 슈테피 그라프가 그랬던 것처럼 강력한 '독재'를 누리고 있지 못하다.

과거 세계를 매료시켰던 테니스 여제들의 이력을 살펴보자.


얼음 여제, 크리스 에버트(Chris Evert).

1455전 1309승. 90%의 승률이라는 (10번 싸우면 9번은 반드시 이긴다는) 스포츠 역사상 가장 뛰어난 승률 기록을 세운

무적의 여성 테니스 스타.

1954년 미국 출생. 아버지가 테니스 코치였으며, 언니와 남동생까지 모두 테니스 계에서 일했던 테니스 가족이었음.

1974년, 19살의 나이에 윔블던 우승 타이틀을 차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다.

당시 10대 소녀의 윔블던 우승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때까지 에버트가 55경기를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으며 연속해서

이겼다는 점이었다.

이때부터 에버트의 9할 승률의 신화는 시작된다.

이후,

- 7번의 프랑스 오픈 우승 (세계 기록, 에버트는 클레이 코트의 여왕이었다),
- 18번의 메이저 대회 우승

등의 기록을 세우며 70년대 가장 위대한 여성 테니스 스타로 남는다.

그녀는 나브라틸로바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선수들과의 상대 전적에서 앞서는 사실상 여성 테니스 계의 무적의 여성이었다.

세계 최초로 양손 백핸드 스트로크를 구사, 이후 자신의 스트로크 스타일을 전세계에서 유행시킨다.

(현재 여성 테니스 선수들의 70%가 에버트의 양손 백핸드 스트로크를 구사한다.)

1970년대 당시 세계 제일의 남자 테니스 스타였던 짐 코너스(Jimmy Connors)와 혼합 복식 조를 맺으면 염문을 부리며 약혼까지 간다.

당시 세계 제일의 남성 테니스 스타와 여성 테니스 스타 커플은 '골든 커플'로 불렸으며 이들의 예정된 결혼에 전세계가 들썩였으나,

결혼은 이뤄지지 않았고 코너스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다.



철녀(鐵女),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Martina Navratilova).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여성 스포츠인, 80년대 가장 위대했던 (남녀 통틀어) 스포츠인 중 하나로 추앙받는 전설의 인물.

1956년 체코슬로바키아 태생. 스키 선수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테니스를 비롯한 모든 운동을 섭렵.

1975년 미국으로 건너와 테니스 활동을 시작. (나브라틸로바는 1981년 체코의 시민권을 버리고 미국인이 된다.)

1978년 윔블던에서 숙적 크리스 에버트를 제압하고 우승, 세계 여자 테니스계 1위 자리에 오른다.

이후 1990년까지 12년 동안 여자 테니스계를 독재하며 세계 테니스 역사에 가장 오랜, 기적의 기록들을 달성한다.

- 윔블던 여성 단식 9번 우승 (세계 기록, 나브라틸로바는 잔디 코트의 여왕이었다),
- 18번의 메이저 대회 우승,
- 31번의 여성 복식 대회 우승,
- 9번의 혼성 복식 대회 우승

90년대 들어 슈테피 그라프, 모니카 셀레스와 같은 천재 신예들에게 밀리기 시작하면서, 1994년 37세의 나이에

여성 단식에는 더 이상 출전하기 않겠다고 은퇴 선언을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후로도 10년간 40대의 나이에도 계속해서 복식 경기에 출전하며 명성을 이어 나간다.

(특히 2003년 47세의 나이에 윔블던과 호주 오픈 혼합 복식 우승을 차지해 다시 한번 전세계를 놀라게 한다.)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인정한 세계 최초의 여성 유명인사였으며, 잘 알려진 동물 애호가이자 채식주의자이다.



골든 슬래머, 슈테피 그라프(Stefanie Maria Graf).

세계 테니스 역사상 전무후무한 "골든 슬램"을 달성했으며, 역사상 두번째로 많은 메이저 대회를 우승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테니스 선수"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인물.

(골든 슬램이란 한해에 윔블던, US 오픈, 프랑스 오픈, 호주 오픈, 거기에 덧붙여 올림픽 금메달까지 차지한,

슈테피 그라프 이전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타이틀이다.)  

1969년 독일 출생. 아마추어 테니스 강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테니스를 시작함.

1987년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여제' 나블라틸로바를 프랑스 오픈에서 제압하고,

(당시 그라프와 나블라틸로바의 프랑스 오픈 결승전 경기는 세계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였음)

세계 여자 테니스 1위 자리를 차지하며 그라프의 시대를 연다.

1988년 나브라틸로바, 사바티니 등 당대의 여걸들을 모두 격파하며 윔블던, US 오픈, 프랑스 오픈, 호주 오픈을 모두 우승한다.

(한해에 4개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한 것은 그라프가 역대 3번째였다)

거기에 88년 서울 올림픽 서독 대표로 출전, 여자 단식 금메달까지 거머쥐며 전무후무한 "골든 슬램"을 달성한다.

(당시 거의 모든 테니스 스타들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올림픽 대회 출전을 꺼렸다.

그라프는 이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국가를 위해 올림픽에 출전한다.)

이후 10년간 그라프는 메이저 대회들을 독식하다시피하며 총 22번의 대회 우승을 차지한다.

이로써 그라프는 명실상부한 에버트-나브라틸로바를 잇는 1990년대 최고의 테니스 스타로 군림한다.

- 프랑스 오픈 6회 우승, 윔블던 7회 우승 (그라프는 클레이, 잔디 코드 모두 강했다)
- 1988년 한해 동안 그랜드 슬램 달성 (이는 나브라틸로바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
- 22번의 메이저 대회 우승 (이는 Margaret Smith Court-24번에 이어 세계 두번째 기록)

2000년 공식 은퇴, 2001년엔 세계적인 남성 테니스 스타였던 안드레 아가시와 결혼해 화제를 불러 일으킨다.

둘 사이엔 아들 딸 두명의 자식이 있다.

무시무시하게 강력한 포핸드가 트레이드 마크. 포핸드가 너무 강력해 백핸드는 좀 약한 것이 아니냐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였음.

시속 180km에 가까운 엄청난 서비스도 주무기.



모니카 셀레스(Monica Seles).

프랑스 오픈 최연소 우승자, 9번의 메이저 대회 우승 등으로 슈테피 그라프에 유일하게 대적할 천재 신예였으나

1993년 경기 중 갑작스러운 관중 습격으로 절정의 기량을 상실, 비운의 테니스 스타로 남고 만다.

1973년 유고슬라비아 (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출생. 14살의 나이에 프로로 전향,

15살의 나이에 테니스 계의 전설 크리스 에버트를 격파하며 전세계에 이름을 알린다.

1990년 프랑스 오픈에서 당대 최강 슈테피 그라프를 이기고 우승. 그라프를 이을 천재로 주목 받기 시작한다.

당시 셀레스의 나이는 16세로 프랑스 오픈 최연소 우승 기록이었다.

이후 셀레스는 한해 93%라 경이적인 승률을 기록하며 여성 테니스 단식 대회를 독식하기 시작한다.

(크리스 에버트의 전성기 때 한해 승률도 91%에 불과했다.) 

불과 3년 간 8번의 메이저 대회를 휩쓸며 또 하나의 테니스 여제의 등극을 예고했다.

그러나, 1993년 슈테피 그라프의 광팬이라던 어느 38세의 미치광이가 셀레스가 경기 중이던 코트로 난입, 셀레스의 등을 칼로 찌른다.

상처는 깊지 않았으나 셀레스는 이때의 충격에서 오랫동안 헤어나지 못하고 1995년 복귀했을 때 호주 오픈에서

겨우 한번 우승을 차지한 뒤 1999년 공식 은퇴하고 만다.


셀레스가 칼에 찔렸을 때.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다.

포핸드와 백핸드 모두 두손을 사용하는 파워 플레잉의 창시자. 또한 스트로크를 줄 때 지르는 엄청나게 큰 괴성으로도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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