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안압지 가는 길목 연꽃단지에는 연꽃이 막 피기 시작했다. 몇 해 전에 조성됐다. 연꽃 단지는 요즘 웬만한 곳을 가도 만날 수 있을 만큼 흔하다. 그렇지만 안압지 연꽃단지는 안압지도 보고 연꽃도 보는 일석이조가 그 매력. 그래서 인기도 날로 오르고 입소문도 빠르다. 이 달 중순 쯤에 연꽃이 절정이면 안압지 가는 길은 자동차와 인파로 난리다. 자칫 안압지가 소홀히 느껴지지 않을까 염려가 될 지경이다. 지난 봄. 맞은 편 유채밭에 유채꽃이 만발했을 때도 그랬듯이.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 애기/ 연밥 줄밤 내 따 줄게/ 요 내 품에 잠들어라/ 잠들기는 늦잖아도/ 연밥 따기 한철일세.
상주지방에 전래되는 민요 '채련곡(採蓮曲)'이다. 언론인이요 사학자였던 문일평은 그의 '호암전집'에 "상주 공갈못의 연은 전국적으로 저명하다"고 적고 있다. 시서화에 능해 삼절(三絶)이라 일컬어졌던 조선 세종조의 문신 강희안은 꽃에 매긴 품계에서 연꽃이 단연 1품이라고 했다. 물론 불가에서 연꽃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6공양물인 꽃·향·초·탕·과일·차 중 꽃 공양이 으뜸이고 그 중 연꽃공양을 제일로 칠 만큼.
세속을 초월한 듯한 연꽃의 청아함과 고결한 모습은 유가에서조차 '화중군자'로 칭할 정도였다. 우리의 고전 '심청전'에서도 연꽃은 극적인 환생의 의미로 묘사돼 있다. 공양미 삼백석에 팔린 청이가 임당수에 몸을 던지자 용왕은 갸륵한 효심에 마음을 돌린다. 청이를 이 세상으로 되돌려 보낸 것이다. 연꽃에 태워. 고구려 무용총 천장 받침 벽화에도 연꽃은 출중한 곡선미로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그런 연꽃이다.
안압지. 신록이 한창이다. 경내에 성큼 발을 내디딘다. 찰랑이는 물결 너머 연꽃들이 우아할 것이라고 여겼지만 연꽃은 아직 보이질 않는다. 대신 못 가로 부평초와 수련이 인근에서 날아온 송홧가루와 범벅이 돼 물 표면은 짙은 녹조색이다. 물갈이가 용이치 않아서 일까. 귀중한 문화재에 담긴 물이 이렇듯 등한시되고 있다니. 좀 전의 연꽃 이벤트가 괜히 얄미워진다.
중년의 문화재해설사가 열심히 설명을 한다. "못 깊이는 2m 안팎이고요. 바닥에는 강회와 바다 조약돌을 깔고 가운데는 우물 정자 모양의 목조물을 만들어 그 속에 연을 심었어요. 왜냐하면 심은 연 뿌리가 연못 전체로 뻗어 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못에 연꽃이 가득하면 못의 정경이 답답하고 좁아 보이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랍니다."
그런 '의도(意圖)'. 안압지는 곳곳에 의도가 많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직후 문무왕 14년(674)에 만들었다. 평지에 판 연못. 5년 뒤에는 화려한 궁궐을 짓고 몇 개의 대문까지 위용을 자랑할 만큼 큰 동궁을 건설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지금은 임해전을 비롯해 건물 3채가 고증을 거쳐 들어서 있다. 아직 많은 건물이 예정에도 없듯 지어질 준비나 되고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못을 한 바퀴 훑으면 눈에 꽉 차게 드는 못 둘레의 호암석(護岩石) 석축이 장관이다. 동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그 석축은 아름답고 절묘하게 굽은 곡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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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 못 둘레의 동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석축은 아름답고 절묘하게 굽은 곡선이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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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석축은 서너번 직각으로 꺾이기도 하고 못 속에서 돌출시켜 놓기도 했다.
너무나 명료한 곡선과 직선의 대비. 그가 낳은 조화. 무슨 표현으로 이들의 조화에 답할 수 있을까. "모든 존재는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설명될 필요가 없다"는 오컴의 면도날이면 가능할까. 이렇듯 그 선들은 미묘한 갈등은커녕 미세한 질투 하나 없이 어울려 되레 미끄러질 듯 힘차다. 어떤 이가 굽이친 곡선을 세어 보았다. 마흔 곳에 이른다는 것이다. 마치 동해안의 해안을 닮았다고 했다.
대왕은 훗날 동해의 영특한 용왕이 돼 나라를 지키려는 의도가 이미 안압지에서 발현된 것일까. 일설에는 아름답게 자란 천혜의 곡선미를 자랑하는 동해의 그 한 곳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해전(臨海殿) 이름 가운데 바다해자(海)를 넣어 동해의 그 아름다움을 지니도록 했을까.
많은 학자들은 안압지의 원래 이름을 월지(月池)라고 주장한다. 이 설은 여러 문헌을 근거로 매우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학계에서도 점차 굳어져 가고 있다. 안압지라는 이름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동안 피폐해 오리나 기러기가 노닐 정도여서 못 조성 700여년이 지난 조선조 때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니, 좀 민망할 따름이다. 만약 월지라는 이름이 정당하다면 달의 모양 또한 아름다운 곡선이지 않은가. 초생달에서 보름달까지의 그 아름다운 여정이 굽이치는 곡선의 석축과 어울릴 때 가슴은 뭉클. 그것뿐이다.
또한 못 안에 떠있는 세 개의 섬. 발해만 동쪽에 있다고 여겨지는 삼신선도를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방장도, 봉래도 그리고 영주도. 신선사상을 배경으로 한 의미는 색다른 맛을 더해준다. 못의 어느 곳에서도 못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구조는 곧 곡선이 갖는 또 다른 장점일까. 물론 곡선이라고 전부 그럴 리는 없지만 안압지 석축이 이루는 곡선은 그로 말미암아 결코 한 눈에 조감할 수 없도록 배려한 장인의 솜씨에 더 신비감마저 일게 한다.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소위 닭실마을에 청암정이 있다. 조선 중기 문신 충재 권벌의 종택과 옆문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청암정은 거북바위 위에 지어진 영남 제일의 정자라는 칭호를 듣는다. 그 청암정을 둘러싸고 작은 연못이 조성돼 있다. 유연한 곡선이다. 절반쯤 석축으로 쌓고 나머지는 자연 그대로의 해안 같은 곡선이 유연하기 이를 데 없다. '한국의 정원'을 펴낸 정동오 교수(전남대)는 그의 책에서 "우리나라의 원지는 직선적인 방지를 기본으로 하는 가장 단순한 형태"라며 "안압지와 청암정 연못이 변화 많은 자연곡선으로 처리돼 이것이 우리나라 조경사상 마지막 같다"고 적었다.
왜 그럴까. 그만큼 자연에 순응하는 자세가 어렵다는 뜻일 게다. 드라이든이 "예술에는 오류가 있을지 모르지만 자연에는 오류가 없다"고 한 말 또한 같은 맥락이다. 여름날 숙주나물 쉬듯 변하는 세상에 이번 여름은 안압지의 직선과 곡선의 조화에 취해봄이 어떨까. 마침 연꽃이 피었다면 그건 제격이다.
김채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