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사망한 권정생의 통장에는 10억이 있었으나 방도 컴컴하고, 화장실도 바깥에 있다.

젊어 걸린 결핵으로 소변이 시원치 않았는데, 추운 겨울에도 일을 보려면 밖으로 나가야 했다. 

 

‘강아지 똥’으로 잘 알려진 권정생은 ‘몽실언니’, ‘한티재 하늘’ 등의 소설이 있다.

 

 

 

권정생이 살던 집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 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 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 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 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 저기 뿌려 주기 바란다.


유언장 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 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 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 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0일 쓴 사람 권정생

주민등록번호 370818-*******

주소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7

 

 

 

                                                 

 

 

 

사망 전의 편지  

정호경 신부님,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숨이 지거든 각각 적어 놓은대로 부탁드립니다.

제 시체는 아랫마을 이태희 군에게 맡겨 주십시오.

화장해서 해찬이와 함께 뒷산이 뿌려 달라고 해주십시오.

지금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3월 12일부터 갑자기 콩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뭉툭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 되었습니다.

지난 날에도 가끔 피고름이 쏟아지고

늘 고통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아주 다릅니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됩니다.

모두한테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요.

재작년 어린이날 몇자 적어놓은 글이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제 예금통장은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쪽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베트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2007년 3월 31일 오후 6시 10분

권정생

 

 (권정생은 2007년 5월 17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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