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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진을 찍고 싶으시지요? 기분 좋게 여행을 다녀왔는데, 사진을 보니 눈으로 본 것만 못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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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행 사진 비법 세 가지를 알려드립니다. ‘삐딱하게’ ‘사람’과 ‘시간’을 찍자, 바로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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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밀만 알고 있으면 이번 주말 연인과 가족, 그리고 친구들의 추억 남기기는 대성공! 모든 사진들은 클릭하셔서 큰 사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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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삐딱하게 - 삼분할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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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 입구입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영남 제일의 산책로’라 했던 그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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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가을이 되면 800m 정도 되는 은행나뭇길이 찬란한 황금빛으로 물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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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뒤에 있던 아빠, 엄마가 “사탕 먹자”고 하자 어린 오누이가 달려오는 모습입니다.
아이들의 위치를 잘 보세요. 한가운데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바깥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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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뒤에 있는 일주문도 한가운데가 아니라 오른쪽으로 약간 벗어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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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메모하세요. 세상은 요지경, 삼분할의 법칙!
- ▲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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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파인더나 디카 액정에 가상의 선을 긋습니다. 가로로 두 개, 세로로 두 개. 그러면 화면이 아홉 개로 나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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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으려는 사람이나 물체를 그 선들이 만나는 점에 놓으십시오. 꼭 들어맞지 않아도 됩니다.
한가운데가 아닌 주변부에 중요한 대상을 놓고 구도를 잡으면 이상하게도 사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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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삼분할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위 사진에서 아이들은 왼쪽 아래에, 일주문은 오른쪽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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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화려한 은행나무 단풍은 위쪽을 뒤덮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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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잘 찍겠다는 욕심에 많은 사람들은 아이들을 한가운데에 놓고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은 잘 나오겠지만, 정작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아이들에 가려서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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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가족을 여행지에서 찍으려면, 명심하세요, 화면 가운데에 넣지 마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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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찍으려는 건 증명사진이 아니라 기념사진입니다. 자, 아래 사진을 보실까요?
- 역시 만추(晩秋)를 맞은 무주 구천동입니다.
- 오른쪽 아래에 사람 하나가 앉아 있습니다.
- 이 또한 가상의 선 오른쪽 아래에 붙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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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을 가운데에 넣으면 단풍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사람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아래는 이 사진에 삼분할 선을 그어본 사진입니다.
어떠신가요?
묘하게도 삼분할 선에 들어맞는 구도가 나왔습니다.
이 사진 찍으라고 죽을 뻔했습니다. 사진 속의 사람, 바로 접니다.
30초 타이머를 맞춰놓고 30m를 달려가 제가 모델이 됐던 사진입니다.
세 장 찍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관뒀습니다.
자, 이건 어떨까요? 아래 사진은 삼장법사가 손오공을 데리고 지나갔던 중국 서쪽, ‘소금계곡’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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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하기 짝이 없는 풍경 속에 한 사람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위치를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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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가운데에서 왼쪽으로 어긋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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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가운데 있었다면 참 웃기는 사진이 됐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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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을 때, 사람(혹은 중요한 풍경)은 언제나 삐딱하게 놓고 찍으세요.
달력 사진 싫어요, 사람을 찍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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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한번 보세요. 아까 보신 사진과 다른 점이 있지요?
네, 맞습니다. 사람을 일부러 지웠습니다. 어떠신지요? 그냥, 괜찮은 달력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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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생동감이 없는 밋밋한 사진입니다. 계곡이 얼마나 큰 지도 잘 모르겠고요.
위의 소금계곡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황량한 풍경으로 가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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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무시무시한 풍경사진에 불과하지요. 거기에 사람이 있으니까 소위 말해서 ‘그림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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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은행나뭇길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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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없었다면 그저 예쁜 사진으로 끝났을 겁니다. 아래 사진은 어떻습니까?
- 이탈리아 피렌체의 아르노 강 풍경입니다. 격렬하게 키스를 하고 있는 연인이 없다면? 역시 달력사진이지요.
- 아무 특색이 없는 그런 밋밋한. 그렇다고 이 연인을 한가운데 넣고 찍었다면 그 또한 말이 되지 않는 사진이 됐을 겁니다.
- 우리가 담으려는 추억은 피렌체의 아르노 강과 다리지 연인이 아니니까요.
- 충북 단양에 있는 온달산성입니다. 바보 온달이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곳입니다.
- 그날, 카메라를 삼각대에 세워놓고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30분 정도? 마을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오더니 제 앞을 스쳐갔답니다.
- 친구들이 먼저 가고, 맨 끝에 따라가던 아이가 계단을 올라가는 순간 파파팍 하고 세 장을 찍었죠.
- 아이한테 너무 고마웠답니다.
- 아이가 있었기에 산성의 규모를 보여줄 수 있었고, 아무런 재미도 없는 사진에 생동감을 선물 받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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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남쪽에 있는 고대 도시 페트라 입구입니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를 찍은 곳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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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있는 엄마와 아들이 없었다면? 한번은 볼지 모르되 두 번 세 번 두고 보는 사진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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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있기 때문에 페트라 입구의 규모를 알 수 있는 것이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음미를 할 사진으로 남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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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또한 삼분할의 법칙에 충실한 구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을 찍어요!카메라는 시간을 기록하는 능력이 있다는 거,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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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스피드를 길게 잡으면 그 시간 동안의 움직임이 그대로 기록된답니다. 아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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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백에 있는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 사진입니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차가운 샘물이 솟구치는 곳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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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쪽 물을 잘 보세요. 이 사진은 셔터를 8초 동안 열어놓고 찍은 모습입니다.
8초 동안 물이 흐르면서 만든 무늬가 고스란히 찍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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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초의 세월을 농축한 결과, 아무 생각 없이 찍었다면 제법 큰 개울 정도로 찍혔을 사진이 신비한 풍경으로 변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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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강의 시작이라는 엄숙한 분위기를 담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성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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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일부러 사람을 넣지 않았습니다. 신비로운 분위기에 인간은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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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진을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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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에 있는 박연폭포 풍경입니다. 셔터 스피드는 1/3초였습니다. 삼분의 일초 동안 떨어지는 폭포수의 궤적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그 사이에 주변으로 튄 물방울들이 바위에 번쩍이는 빛을 창조했고, 폭포수가 수면과 만난 지점에는 물안개가 피어올랐습니다.
어떠신지요? 박연폭포를 본 순간부터 저는 이렇게 찍으리라 작심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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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어마어마한 폭포를 사진 한 방으로 기록하려면 장기 노출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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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바위에 있는 사람들도 주목해보세요.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폭포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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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진입니다. 전북 고창에 있는 학원농장 보리밭입니다. 내년 5월, 꼭 가보시길 권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보리밭입니다. 그 보리밭에서 저는 바람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보리밭을 훑고 사라지는 바람이 사진에 담겨 있습니다. 셔터 스피드가 1/15였습니다. 굉장히 긴 시간입니다. 아무렇게나 찍었다면 이 흔적은 사라지고, 대신에 조금 기울어진 보리들이 찍혔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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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시간입니다. 점점 쌀쌀해지는 이 계절에, 카메라를 메고 떠나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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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려드린 세 가지 비법을 기억해두셨다가 이번 주말에 실험해보심은 어떨지요.
부록!
11월 13일 자정까지 여행지 사진을 보내주세요. -
사진 상담해드리고, 좋은 사진은 보정을 해서 다음 주 ‘박종인의 여행편지’에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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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파일 사이즈가 1메가바이트를 넘지 않게 jpg 포맷으로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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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실 곳은 seno@chosun.com 제 이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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