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오를수록 고개 숙여지는 영산
한라산은 영산이다.
해발 1950m의 남한 최고봉이라는 찬사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산악인들은 ‘인간의 산이 아니라 신의 산’으로 떠받들며 고개숙인다.
기축년 첫날 한라산은 순백의 운무에 휩싸였다.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한라산 어리목을 찾은 등산객들은 거센 바람과 함께 눈보라를 흩뿌리는 한라산의 위용에 저절로 겸손해진다.
겨울 한라산은 산사람의 나태와 교만을 용서치 않는다.
사진작가 서재철씨는 “올 겨울은 어느 해보다 눈이 빨리와서 한라산이 만설을 이뤘다”며 “추위가 매섭고 정상부에 설원이 펼쳐져
히말라야 원정을 가는 팀도 꼭 한라산에서 기후적응 훈련을 받는다”고 말했다.
은하수를 손으로 잡아당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이란 뜻의 한라산. 기암괴석과 다양한 식생분포, 흰사슴을 탄 신선이 물을 마셨다는 전설이 녹아든 백록담 등을 품은 명산 중의 명산이다.
한라산은 약 120만년 전에 바다 한가운데서 솟아나기 시작해 30만~10만년 전의 3단계 화산활동 때 생성됐다.
그 이름은 ‘은하수를 손으로 잡아당길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이라는 의미다. 영실의 오백나한도 이때 탄생했다.
2만5000년 전의 마지막 대폭발로 백록담과 현재의 장축 73㎞, 단축 31㎞인 제주도 해안선이 완성됐다.
그만큼 한라산은 젊은 산이다. 백록담은 제주 곳곳에 산재한 360여개의 오름을 품고 있다. 휴화산으로 대부분이 현무암으로 덮인 한라산은 그 줄기가 동서로 뻗어 있고, 남쪽은 급한 반면 북쪽은 완만하다.
제주 섬 중앙에 우뚝 솟은 한라산의 웅장한 자태는 자애로우면서도 강인하다.
한라산의 사계절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그 중에서도 겨울 한라산은 절경 중의 절경으로 꼽힌다.
해양성 기후에 따른 높은 습도와 매서운 북서계절풍이 만들어내는 눈꽃은 환상 그 자체다.
바위와 나무에 얼어붙어 스스로 겨울 눈꽃의 운명을 인고한다.
한라산은 다양한 식생분포로 동·식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아열대에서 한대 기후대까지 수직분포를 보이며 1800여종의 식물과 4000여종의 동물이 서식한다.
등산로 곳곳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노루의 맑은 눈망울은 한라산 등반의 숨겨진 즐거움이다.
한라산 노루는 한때 멸종위기에 놓였으나 80년대 후반부터 적극적인 보호 활동을 펼친 끝에 현재 3000여마리로 불어났다.
1800여종의 식물 중 구상나무와 시로미는 군락을 이룬다.
한라산을 이야기하며 정상의 백록담을 빼놓을 순 없다.
깊이 108m의 산정화구인 백록담은 흰사슴을 탄 신선이 물을 마셨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인근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돌매화 나무도 자란다.
최근에서 한라산 중턱에서 ‘소백록담’이 발견돼 화제다. 그러나 등반통제구역이어서 등산 마니아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주봉인 백록담을 타고 내려오면 윗세오름과 방아오름이 양쪽으로 늘어서있는 ‘선작지왓’을 만난다.
털진달래와 산철쭉이 만개한 드넓은 고산지대의 초원이다.
백록담에서 고개를 돌리면 500여개의 돌기둥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백나한으로 불리는 영실기암이 눈에 들어찬다.
백록담 동북쪽 왕관릉과 삼각봉의 위용 역시 영실기암 못지않다. 한라산 북서쪽에는 어리목계곡이 자리잡고 있다.
동쪽의 탐라계곡과 더불어 한라산의 가장 깊고 큰 계곡중 하나다.
어승생악 동쪽에 밀집한 골짜기는 ‘구구곡’으로 기암괴석이 수목 속에 들어서 속세와 절연된 느낌이다.
한라산은 화산회토이다 보니 빗물이 쉽게 스며들어 장마철 폭우때 외에는 대부분의 계곡은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다.
한라산의 신비와 가치는 이미 세계가 인정했다. 유네스코는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을 2006년 6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했다.
경관이 빼어날 뿐 아니라 지질학적, 생물학적으로도 탁월한 가치를 지닌 명산이라는 의미다.
-성판악·관음사 코스…정상까지 등반 가능-
제주시에서 한라산 동쪽 중허리를 가로질러 서귀포를 잇는 5·16도로는 숲속 관광도로다.
한라산 서쪽 중허리를 가로질러 제주에서 중문을 연결하는 1100도로는 1100고지를 통과한다.
한라산 등산코스는 이들 도로에서 시작된다. 현재 등산 가능한 코스는 4개.
이중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는 정상등반이 가능하며, 어리목과 영실코스는 해발 1700m 윗세오름까지만 오를 수 있다.
윗세오름에서 정상까지의 서북벽 구간은 자연휴식년제가 적용돼 출입이 통제됐다.
어리목코스는 한라산 서북쪽 코스로 4.7㎞, 약 2시간 거리다.
졸참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어리목 계곡을 지나 나무계단으로 된 숲 지대를 1시간쯤 걸으면 시원스럽게 펼쳐진 사제비동산이 나온다.
이곳에서 한라산 정기를 담은 약수를 한모금 마시고 만세동산으로 이어지는 돌길로 들어선다.
노루를 벗삼아 걷다보면 어느새 백록담 화구벽을 눈앞에 두고 최근 새로 단장한 윗세오름 대피소를 만나게 된다.
영실코스는 한라산 서남쪽 코스로 가장 짧은 등산로다. 기암괴석의 빼어난 경관은 3.7㎞의 등반로를 단숨에 올라가게 만든다.
윗세오름까지 1시간30분쯤 걸린다.
1100도로에서 영실진입로 2.5㎞ 지점에 매표소가 있고, 이곳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도보로 45분쯤 소요된다.
오를 때는 어리목코스, 하산은 영실코스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성판악코스는 등산로가 비교적 완만해 정상등반을 하는 코스로 즐겨 이용된다. 등산로는 활엽수가 우거져 삼림욕도 겸할 수 있다.
해발 1800고지에는 구상나무 군락지대다. 7.3㎞로 4시간30분 거리다.
8.7㎞의 관음사코스는 계곡이 깊고 산세가 웅장해 한라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성판악코스 이용자들이 하산코스로 많이 이용한다.
<제주 | 강홍균기자 khk505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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