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바다를 좇고, 발은 ‘학의 춤’ 좇고-
경남 마산시 무학산은 오목한 항구의 뒷산과 같다. 해발 767m로, 옛 이름은 풍장산이다.
백두대간 낙남정맥의 최고봉이다.
무학산 정상에서 시루봉쪽으로 이어진, 학의 다리처럼 펼쳐진 능선에 등산객이 줄을 잇고 있다. |
무학(舞鶴)은 말 그대로 ‘춤추는 학’이라는 뜻.
무학산은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듯한 산세를 보인다.
마산시를 서북쪽에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이 산자락 아래
40여만명의 마산 시민이 산다.
마산은 본래 무학산 자락이 마산만에 빠져있었던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최치원 선생이 이곳에 월영대를 지을 때 산기슭을 핥는 물결에 달이
비치는 정경을 보았을 것 같다.
산의 형세가 학의 정수리와 날개, 그리고 다리를 닮았다.
등산로에 설치된 무학산 지형 사진 위에 학의 모습을 겹친 그림을
보면 실감 난다.
무학산 산세는 가파르고 계곡물은 적다.
능선을 타면 마산만을 비롯, 남해안 다도해를 함께 볼 수 있다.
산행이 힘겨울 때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 땀이 저절로 식는다.
무학산 등산길은 12가닥이 있다.
그중에서 서원계곡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의 경관이 가장 수려해
등산객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무학산은 단단한 암석으로 이뤄졌지만 서원계곡은 비교적 풍화에 약한 화강암맥이 뻗쳐 깊고 길게 파여있다.
서원계곡은 과거 서원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지금은 사찰이 6개나 있다.
서원계곡은 본래 바다까지 이어진 긴 골짜기였다.
색깔이 밝은 화강암 바위와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골짜기가 2㎞가량이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도시가 확장되면서 해변 쪽부터 개발됐고, 최근에는 산 기슭 쪽에 유원지 시설 공사가 이뤄지며 계곡 면이 콘크리트 벽으로
평평해졌다.
이 때문에 등산객이 계곡을 따라 걷지 못하고 산 비탈면을 잘라 만든 길을 오르내리고 있다.
이 비탈길을 따라 40여분쯤 올라가면 중턱 절벽에 세워진 전망대를
만난다.
이곳에 서면 항아리처럼 생긴 마산만과 이 만의 가장자리에 건설된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마산만 입구 쪽에는 마산과 창원을 잇는 늘씬한 모습의 마창대교가
보인다.
무학산 자락에는 문신미술관, 만날고개, 서마지기, 국립 3·15 민주묘지 등이 있다.
문신미술관은 작고한 조각가 문신씨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부인 최성숙씨가 지었다.
문신씨는 프랑스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뒤 귀국해 고향인 무학산
자락에 머물렀다.
무학산 산세가 새의 양 날개처럼 균형을 잡았듯이 문신씨는 삼라만상이 지닌 대칭성을 추구한 작가로 유명하다.
만날고개는 모녀상봉에 관한 전설의 장소였으나 오늘날에는 그리운 사람이 만나는 현장이다.
서마지기는 정상 아래 넓은 평탄지로 마산시민정신을 결집하는 큰 일이 있을 때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국립 3·15 민주묘지는 4·19 혁명 도화선을 몸으로 태운 의사들의 묘역이다.
무학산 정상에서는 새의 신체구조를 생각하며 걸을 수 있다.
새의 다리에 해당되는 곳은 시루봉이고, 정수리에 해당되는 곳이 학봉이다.
왼쪽 날개 쪽은 봉화산이 되고 오른쪽 날개는 대곡산이다.
어느 쪽이나 오르내리는 데 3~4시간 걸린다.
이은상 시인이 고향 마산만을 그리며 쓴 시에 곡을 붙인 ‘가고파’ 가사를 떠올리며 걷고 싶다면 학봉 길이 좋다.
꿈엔들 잊지 못한다는 ‘그 잔잔한 고향바다’가 눈에 들어오고 그 풍경 한가운데는 ‘돝섬’이란 작은 섬이 떠있다.
무학산은 일부 구간이 안식년을 가져야 할 정도로 많은 등산객이 몰리고 있다.
‘경남생명의 숲’ 회원들이 각종 식물의 이름과 특징을 설명하는 명패를 달아 현장학습하기도 좋다.
〈마산|김한태기자〉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는 사연 있는 고개가 많다.
무학산 남쪽 끝자락에 자리한 ‘만날고개’도 그중 하나다.
만날고개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져내려온 애틋한 모녀상봉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운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 전설이 쌓여가는 만날고개 기념비 |
고려 말엽 마산포 바닷가 마을에 살던 가난한 양반 이씨 가문의 편모 슬하 큰 딸과 친정 어머니가 전설의 주인공이다.
열일곱살 맏딸이 어머니와 어린 두 동생을 보살피고자 고개 너머 부잣집 윤진사댁으로 시집을 갔는데 엄한 시집살이를 겪으며
눈물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친정이 그리워도 마음대로 가볼 수 없던 그 딸이 어느날 먼 발치에서라도 친정집을 보려고 고개에 올랐는데 때마침 시집간 딸이 보고싶어
고개를 올라온 친정 어머니와 ‘이심전심’으로 만나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얘기다.
이 전설이 면면히 이어오면서 고개 이름이 만날고개로 굳어졌다.
한국전쟁 때 많은 피란민이 마산에 몰려와 연고자를 찾을 때 이곳에 오면 만날 수 있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뒤 마산에 큰 섬유회사와 수출자유지역이 들어선 후에는 수많은 선남선녀들이 몰려들었다.
또 20여년 전부터는 추석 이튿날 이곳에 오면 마음에 둔 사람끼리 만날 수 있다는 새로운 전설까지 생겼다.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짝사랑’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모이게 된 것이다.
경남대학 정문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인 이 고개는 마산 월영동에서 내서읍 감천골로 넘어가는 언덕에 있다.
예로부터 해산물을 내륙쪽으로 팔러가던 길이기도 하다.
마산시는 1980년대 들어 만날고개 전설을 민속행사로 발전시키자는 여론에 따라 정례 행사로 만들었다.
이제는 ‘만날제’란 이름으로 매년 추석 다음날부터 3일간 신파극을 곁들인 국악뮤지컬과 전국명창대회 등을 연다.
고개에 오르는 길을 모두 포장하고 주변 공원도 조성했다.
최근에는 새해 일출 관광 명소로도 각광 받고 있다.
〈김한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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