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우고 / 오세영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산이 된다는 것이다.

        나무가 나무를 지우면

        숲이 되고,

        숲이 숲을 지우면

        산이 되고,

        산에서

        산과 벗하여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나를 지운다는 것은 곧

        너를 지운다는 것,

        밤새

        그리움을 살라 먹고 피는

        초롱꽃처럼

        이슬이 이슬을 지우면

        안개가 되고,

        안개가 안개를 지우면

        푸른 하늘이 되듯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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