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12] 새벽밥 - 김 승 희



일러스트=이상진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 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



                그래도, 껴안을 수 있는 사랑이 있기에…
                                            김선우·시인


가끔 새벽에 일어나면 밥솥을 열어본다. 별들이 밥이 되어 껴안고 있는 밥솥이 당신의 주방에도 있을 것이다.
꿈과 이상이 현실과 동떨어져 공중부양 중이라면, 그것은 그냥 별이다.
별은 아름답지만 우리의 맨몸을 덮어줄 수도 허기진 일상을 채워줄 수도 없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다시 밥이 될 때까지 우리는 온몸으로 '살아야' 한다.
별이 밥이 되는 삶의 연금술에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으스러져라 껴안는 사랑뿐이다.

타인의 고통을 타인의 것으로만 간주할 때 세계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의 혁명. 이것은 문학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 중
하나일지 모른다.

시인 김승희(56)는 사랑을 통해 별과 쌀을 결합시키며 타인의 장벽을 해체한다.
사랑 없는 '당연'과 '물론'의 세계도 해체한다.
모든 억압과 부자유로부터의 탈주. 독을 없애는 독. 상처를 치유하는 상처. 김승희에게 현실은 매순간 치열한 싸움터다.
사랑 없는 삶이 너무나 많으므로 사랑을 깨우기 위해 시인은 싸울 수밖에 없다.
싸움은 혹독하고 상처는 깊지만 낭자한 상처들에서 싹처럼 별이 돋는다.
사랑을 위해 싸운 상처로부터 돋아난 것들은 두근거린다. 별은 밥이 된다. 생명의 약동과 치유를 향해 있으므로.

김승희는 노래한다.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 (중략)/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그래도 라는 섬이 있다〉).

아프다. 현실이 아프고 현실을 견인해내려는 몸부림이 아프다.
사랑이 아니고는 건너기 힘든 세월이 너무도 흔하지 않은가.
그 역시 병상에 있는 가족을 간호하며 힘든 세월을 보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고 그가 말할 때 나는 온 가슴으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오래 싸웠으므로 이제 그만 쉬라고 말해주고도 싶다.
하지만 그는 야생의 영혼을 가진 샤먼. 경계를 가로지르며 그는 솟구쳐 오를 것이다.
"억압을 뚫지 않으면, 악업이 되어, 두려우리라"고 말하는 사랑의 전사이므로. 사랑의 빅뱅을 꿈꾸는 시인과 함께
세상의 모든 '그래도'에 '새벽밥'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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