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사 A씨는 작년 2월 말 1년간 수업했던 광주광역시 한 사립대에서 ‘이번 학기 강의를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재임용 심사 결과를 개강 한 달 전 알려줘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도 며칠 전에야 알게 됐다. 게다가 A씨는 퇴직금도 못 받았다. 교육부 지침상 대학이 주당 5시간 이상 수업하면 퇴직금을 줘야 하는데 이를 피하려고 한 수업을 여러 개로 쪼개 A씨 수업 시간이 4.5시간이 됐기 때문이다. A씨는 “수강 신청까지 다 받았는데도 학교의 일방적 통보에 일자리를 잃는 파리 목숨 신세”라며 “억울하지만 계속 학교에서 강의해야 하기 때문에 항의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대학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는 강사들의 처우와 고용 불안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강사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2019년 도입된 일명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오히려 강사의 일자리를 악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사법은 시간강사를 정식 교원으로 인정하고, 최소 1년 이상 임용, 3년간 재임용 심사를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큰 결격 사유가 없으면 대학이 대체로 3년간 고용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또 수업이 없는 방학에도 시간강사에게 임금을 주도록 했다. 이 학교, 저 학교 옮겨 다녀 ‘보따리 장수’로 불린 강사의 불안정한 고용 여건을 개선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현실에선 고용과 처우 모두 퇴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강사 자리가 크게 줄었다. 대학이 사실상 3년간 고용을 보장해야 하는 강사 대신 기존 교수들에게 수업을 더 맡기거나, 초빙·겸임 교수를 늘린 것이다. 보통 다른 직장에 소속된 초빙·겸임 교수는 계약 기간이 자유롭고 방학 중 임금, 퇴직금을 안 줘도 된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전국 대학 강사는 강사법 시행 전인 2018년 7만5329명에서 지난해 6만2440명으로 6년 만에 17% 줄었다. 같은 기간 겸임 교수는 37%(1만8971명→2만5943명), 초빙 교수는 23%(7603명→9343명) 급증했다. 최근엔 초빙·겸임 교수보다도 처우가 낮은 연구원을 채용하는 꼼수도 나오고 있다. 강사를 연구실의 연구원으로 채용하고 수업을 맡기는 식이다.
신규 박사들이 강사가 되기는 더 힘들어졌다. 기존 강사들이 사실상 3년간 임용을 보장받자 경력 없는 신규 박사들이 수업을 맡기가 더 어려워진 것이다. 작년 2월 대구 한 사립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30대 B씨는 1년 동안 대학 3곳에 강사를 지원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B씨는 “신규 채용도 거의 없는데, 지방 대학들이 전공 통폐합까지 해서 설 자리가 더 없어졌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작년 신규 박사 학위 취득자를 조사했더니 응답자 1만442명 중 29.6%가 취업을 못 했다고 답했다. 조사를 시작한 201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부산 한 사립대 교수는 “학문 후속 세대가 끊길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강사법은 방학 중에도 강사에게 임금을 주도록 규정하고, 교육부는 1년간 방학 총 22주 중 시험 채점 등을 고려해 4주간 임금을 지급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하지만 현재 4주 치 임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사립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법 시행 초 지원했던 ‘강사 처우 개선비’가 4년 만에 끊기자 대학들도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또 교육부가 현행법(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과 퇴직금 관련 법원 판결을 토대로 ‘주당 5시간 이상, 1년 이상 수업한 강사에게 퇴직금을 지급한다’는 지침을 대학에 내렸지만, 상당수 사립대는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학들은 등록금 동결, 전공 통폐합 등으로 강사를 늘리기 어렵다고 하지만 이 문제를 방치하면 고등교육의 뿌리가 흔들릴 수 있다”면서 “미국처럼 강사 자리를 얻지 못한 박사급 인력도 일정 기간 연구를 할 수 있도록 R&D(연구·개발) 비용을 지원하는 식으로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250430)
☞강사법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책을 담은 고등교육법 개정안. 2019년 8월 강사를 정식 교원으로 인정하고 최소 1년 이상 임용과 3년간 재임용 심사를 보장하는 강사법이 시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