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읊어 보니

[3188]그해 봄에 / 박 준

ironcow6204 2025. 5. 5. 16:12

 

 

 

 

그해 봄에
                 박준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가을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