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읊어 보니

[3171]그의 시 / 도종환

ironcow6204 2024. 11. 1. 11:43

 

 

 

 

 

그의 시 
           도종환



그의 시는 비단처럼 화사하지 않다  

그의 시는 달변이지 않고  

세련된 기교로 탄성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다  

그의 시는 연필로 쓴 시라서  

읽다가 조금 고쳐도 될 것 같다  

다소 어눌한 데가 있고 투박한 것은  

고향 언저리를 맴돌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잡곡밥처럼 따스해서  

천천히 음미하며 읽게 된다  

그가 뜨겁기보다 따스한 사람이라 그럴 것이다  

그는 시를 쓰다가 가만히 눈물을 흘리곤 한다는데  

그래서 그의 시를 읽다가 눈물 날 때 있다  

사는 건 고달프고 

많이들 외로워한다는 걸 그는 안다  

그 자신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의 시를 읽는 동안 남을 용서하게 되는 것도 좋다  

그의 시는 깃발처럼 휘날리지 않고  

나팔 소리가 되어 전선으로 몰려가게 하지도 않는데  

어떤 때는 명치끝을 뜨겁게 하고  

주먹을 쥐게 한다



그의 눈빛이 맑기 때문이다

맑은 눈으로 차분하게

먼 노을을 응시하곤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