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斷想
[22360]한국 뮤지컬 시장을 미국과 영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넷째로 큰 시장으로 본다.
ironcow6204
2024. 10. 2. 09:11
굳이 뉴욕 브로드웨이까지 날아가지 않아도 좋다.
지금 우리 극장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인정받은 미국의 ‘공연계 오스카’ 토니상 수상 대작 뮤지컬들로 북적인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 우리 창작진과 배우들이 빚어낸 화려한 무대는 덤이다.
13일 현재 우리 극장에 공연 중인 주요 라이선스 뮤지컬들이 받은 토니상 숫자는 총 18개.
토니 8관왕 ‘하데스타운’, 6관왕 ‘시카고’, 4관왕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이 맞붙고 있다.
내달 7일엔 토니 6관왕 ‘킹키부츠’도 초호화 캐스팅 10주년 기념 공연을 개막한다.
‘토니상 뮤지컬 대전’이라 할 만하다.
공연계에선 지난해 티켓 매출만 5000억원에 육박한 한국 뮤지컬 시장을 미국과 영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넷째로 큰 시장으로 본다.
시장이 크고 관객이 열정적인 만큼 뮤지컬 본산인 뉴욕 브로드웨이와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인정받은 대작 뮤지컬들도 해외 투어나 라이선스 공연 때 늘 우선순위에 놓고 한국 시장 문을 노크한다.
영국 로런스올리비에상을 7개, 미국 토니상을 5개 받은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의 뮤지컬 ‘마틸다’나 토니상 10관왕 ‘물랑루즈!’처럼 유럽이나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최초로 현지 언어 라이선스 공연을 하는 경우도 이젠 낯설지 않다.
‘넌 또 출근해, 또 출근해, 퇴근은 없어….’
마녀들이 부르는 이 복장 터지게 애절한 노래 속에, 지옥의 왕 하데스가 지배하는 하데스타운의 사람들은 고향도 잊고 이름도 잊은 채 고된 노동의 춤을 춘다.
올여름 가장 주목받는 토니상 수상 뮤지컬은 21세기의 새로운 고전이 될 ‘하데스타운’.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를 뉴올리언스풍의 재즈와 포크 록에 실어 대공황기를 연상시키는 스팀펑크 분위기의 현대적 서사로 재해석했다.
초연부터 “완벽하게 천국 같은 작품”(버라이어티)이자 “현대의 우화가 된 그리스 신화”(가디언)로 극찬받았고, 브로드웨이에서 벌써 1억8900만달러(약 2600억원) 매출을 올렸다.
우리나라에선 코로나 팬데믹 와중이던 2021년 초연에 이어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라이선스 재연이 진행 중이다.
<뮤지컬 '하데스타운' 2024년 공연.>
관객을 사로잡는 힘의 요체는 신화를 지금 우리 이야기로 다시 풀어낸 동시대성일 것이다.
예술가 오르페우스(조형균·박강현·김민석)는 가혹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불러올 노래를 완성하려 발버둥치느라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연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에우리디케(김수하·김환희)는 배고픔과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하데스가 내민 ‘노예 계약서’에 서명한다.
젊은이들 앞에 펼쳐진 세상이 황량하고 신산한 것은 신화 속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https://youtu.be/Pfwt09WDFAs?si=XsPY0omD5Tqp8jyj
고된 불황기를 연상시키는 지상 세계는 자유로운 대신 춥고 배고프고, 하데스타운에선 허기를 채우기 위해 하데스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인간들이 녹슨 기계를 돌리며 장벽을 쌓아 올린다.
이 설정은 이민을 막기 위해 국경 장벽을 쌓았던 트럼프 시대의 미국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뮤지컬은 배우·음악·무대장치 등 무대 위 모든 것이 우아하게 세공된 톱니바퀴처럼 쉬지 않고 움직이며, 그 전체가 어우러져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이룬다.
비록 끝이 정해져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꿈과 사랑,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지옥 끝까지라도 가보는 것이 젊음. 신화의 결말을 알면서도 무대 위 젊은이들은 다시 처음부터 노래를 시작한다.
여배우 최정원이 최재림, 강홍석과 함께 극의 안내자인 헤르메스 역을 맡아 성별 벽을 허문 캐스팅도 화제다.
10월 6일까지, 8만~17만원.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 사랑과 살인편' 다이스퀴스 역 배우 정상훈의 지난달 9일 언론 시연회 공연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