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斷想
[22257]이번에 마지막으로 퇴역하는 F-4E는 ‘노인 학대’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정도로 40년 넘게
ironcow6204
2024. 7. 9. 08:36
1969년부터 55년 동안 한반도 영공을 수호한 ‘하늘의 도깨비’ F-4 팬텀 전투기가 다음 달 7일 퇴역을 앞두고 지난 9일 국토순례비행을 했다.
수원 기지에서 출발해 대구에서 재급유를 하고 대구에서 다시 수원으로 돌아오는 약 3시간 15분 동안 팬텀은 그동안 지켜온 한반도에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앞으로 자신을 대신해 우리 영공을 수호할 KF-21 ‘보라매’와 편대 비행을 하며 임무 교대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본지를 포함해 취재진 4명이 팬텀의 고별 비행에 탑승했다.
<55년 영공 수호 임무 끝냅니다, 굿바이 팬텀 - '하늘의 도깨비' F-4 팬텀 편대 4기가 9일 국토 순례 비행 중 부산 송정해수욕장 상공을 날고 있다.
1969년 도입 후 55년 동안 우리 영공을 지켜온 팬텀은 다음 달 퇴역을 앞두고 고별 비행에 나섰다.
한국은 당시 세계 최강 전투기였던 팬텀의 4번째 운용국이 되며 북한 공군력을 압도할 수 있었다.
이날 본지 기자가 탑승한 팬텀기는 1975년 국민들이 낸 방위 성금으로 구입했을 당시 모습인 정글 위장 무늬로 도색했다.>
비행이 시작된 경기도 수원의 공군 10전투비행단 기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활주로에 늘어선 회색 F-4E 팬텀 사이에서 정글 위장을 한 4호기가 눈에 띄었다.
1975년 전 국민이 모은 방위성금 71억원으로 미군에서 인수한 F-4D 5대를 기리는 뜻으로, 당시와 똑같은 무늬로 새로 도색한 것이다.
IMF 금 모으기 운동 20여년 전에 우리 국민은 국토를 지키겠다고 십시일반 돈을 모았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 돈으로 1969년부터 미국으로부터 우리 공군이 무상임대 중이었던 F-4D 6대 중 5대를 구입했다.
당시 F-4D는 현재의 F-35 스텔스 전투기에 비견되는 압도적 능력으로 남북한 공군 전력을 역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후로 우리 군은 팬텀 계열 기체(F-4D·F-4E·RF-4C) 190여 대를 운용해왔다.
이번에 마지막으로 퇴역하는 F-4E는 ‘노인 학대’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정도로 40년 넘게 현역으로 뛰었다.
사다리를 올라 후방석에 앉자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계기판, 백미러, 레이더 스위치 및 각종 결속 도구는 때가 타고 도색이 벗겨져 있었다.
이 후방석에 전천후 전폭기 팬텀이 당시 ‘게임체인저’로 우리 공군력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한 이유가 담겨 있다.
무기통제사로 불리는 후방석 조종사는 레이더 운용, 좌표 입력, 공대지 레이저 유도 폭탄(LGB) 조준 등 무장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팬텀 후방석 조종사로 830시간을 비행한 이성진 대구 제11전투비행단 부단장(대령)은 “공대지 미사일 팝아이를 비롯해 최대 8480kg의 무장을 탑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공군 관계자는 “팬텀이 수원 기지에 배치된 이후 북한이 전투기의 도발이 크게 위축됐다”고 했다.
이날 비행은 팬텀 4기 편대가 과거 팬텀이 활약했던 전적지를 찾는 것으로 시작했다.
소련 폭격기 TU-16(1983년), TU-95와 소련 핵잠수함(1984년) 등 공산 세력이 우리 동해를 침범했을 때 맹활약을 펼쳤던 동해, 1971년 국토 최서남단 가거도(소흑산도)에 출현한 북한 간첩선 격침 작전에 참가했던 남해 등을 두루 찾았다.
<F-4 팬텀 편대 4기와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2기가 9일 델타(Δ) 대형으로 남해 상공을 비행했다.
좌우 꼭짓점에 있던 KF-21 2기가 전남 고흥 앞바다에서 각각 급선회하며 대형에서 이탈하자 팬텀 편대가 플레어(미사일 회피 섬광)를 발사해 작별 인사를 건넸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대구에서 연료 재급유를 마치고 다시 날아오른 사천에서 펼쳐졌다.
대구에서 이륙하고 10분가량이 흐르자 경남 사천에서 날아오른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이 팬텀 편대에 합류했다.
수신기 너머로 KF-21을 뜻하는 ‘보라매’라는 콜 사인이 들려왔다. 팬텀과 KF-21은 델타(Δ) 대형을 이뤘다.
팬텀 편대장 ‘파파1′이 선두에, KF-21이 좌우 꼭짓점에 섰다. 가운데에서는 방위성금 헌납기 도색을 한 팬텀4호기가 비행했다.
국토순례비행 장면을 촬영하기 위한 F-15K 2기는 수시로 위치를 바꿔가며 이 장면을 촬영했다.
공군의 과거(팬텀), 현재(F-15K), 미래(KF-21)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1969년부터 한반도를 지켜온 팬텀, 팬텀이 은퇴하면 장거리 공대지 타격 역량을 물려받아 북핵을 억지하는 ‘킬체인’의 핵심 역할을 수행할 F-15K, 앞으로 팬텀의 빈자리를 채울 우리 기술로 개발한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 KF-21 8대가 경남 합천에서부터 사천을 거쳐 고흥 나로도까지 함께 날았다.
눈 아래로는 삼천포대교, 여수 거북선대교, 한려수도가 펼쳐졌다.
<'하늘의 도깨비' 탄 기자 - 본지 양지호 기자가 정글 도색을 한 팬텀에 타고 국토 순례 비행을 마친 뒤 수원 기지에 착륙해 손을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