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1]업계에선 ‘저질 콘텐츠의 온상이 된 소셜미디어에 이용자들이 피로감을 느낀 것’이라는
ironcow6204
2024. 2. 13. 10:00
한국인들이 메타의 소셜미디어(SNS)인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떠나고 있다. 가짜 뉴스와 허위 광고 등이 넘쳐나는 온라인 공간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10일 빅데이터 분석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11월 페이스북의 국내 월간 활성 이용자(MAU) 수는 894만명으로 나타났다. MAU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서비스를 사용한 이용자 수를 말한다. 과거 국내 소셜미디어 중 1위를 차지하던 페이스북 MAU는 지난 2월 약 980만을 기록해 처음으로 100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이어 9개월 만에 900만명 선도 무너진 것이다. 1년 만에 이용자 140만명이 떠났다.
상대적으로 젊은 층에서 인기가 높은 인스타그램의 국내 MAU 역시 줄어드는 모양새다. 지난 8월 약 1925만명이던 인스타그램의 MAU는 9월 1901만명, 10월 1885만명, 11월 1865만명으로 3개월 연속 쪼그라들었다. 사진·영상 중심의 SNS인 인스타그램은 지난 2021년 짧은 영상인 ‘릴스’를 도입한 후 이용자를 끌어모았지만 역성장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선 ‘저질 콘텐츠의 온상이 된 소셜미디어에 이용자들이 피로감을 느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는 유명인 사칭 허위 광고와 가짜 뉴스·혐오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다. 회사 측은 이를 걸러내기는커녕, 돈만 내면 아무 콘텐츠나 게재가 가능하도록 하면서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 결과 2019년 페이스북 이용 경험이 있는 초중고생은 80.3%에 달했으나, 지난해에는 46.1%로 쪼그라들었다. 젊은 층의 외면을 받으면서 이용자수는 앞으로 더 급격히 줄어들게 된 것이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최근 돈을 내면 ‘본인 인증 배지’를 주는 유료 서비스를 한국에 도입했다가 이용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메타는 이달 초 인증 배지 유료 구독 서비스 ‘메타 베리파이드(Meta Verified)’를 한국에 도입한다고 밝혔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이용자가 제출하는 정부 발행 신분증을 확인한 뒤, 실제 본인임을 인증하는 ‘블루 배지’ 마크를 계정 옆에 붙여주는 서비스다. 이전까지 블루 배지는 널리 알려진 유명인을 대상으로 메타가 자체적으로 붙였는데, 이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블루 배지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겪고 있는 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올해 초부터 유재석·백종원·이영애를 비롯해 현정은(현대그룹 회장)·장하준(경제학자)·김종인(정치인) 등 유명인을 사칭한 계정으로 투자 권유, 피싱 광고가 급증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것처럼 사칭 계정을 만들어 이성에게 돈을 송금받는 이른바 ‘로맨스 스캠’, 다단계 판매 같은 불법적 부업 권유 등 범죄 방식도 다양해졌다. 소셜미디어 오염 사태가 심각해지자 지난달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비롯한 정부 부처는 긴급 조사에 들어가거나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했다. 블루 배지를 주는 메타 베리파이드 비용은 최대 월 3만5900원. 이용자들은 “소셜미디어 오염을 조장한 기업이 오염을 핑계로 이용자들에게서 돈을 벌려 한다”고 비판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가짜 계정과 허위 광고는 ‘돈만 내면 무엇이든 광고할 수 있다’는 운영 정책 때문에 가능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수많은 에이전시를 통해 광고 영업을 하거나 온라인에서 직접 광고 신청을 받는데, 이 과정에 콘텐츠에 대한 검증 및 승인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한 마케팅 업계 관계자는 “4~5년 전에는 페이스북 광고 승인에 일주일이 걸렸는데, 지금은 한시간이면 승인이 난다”면서 “거절당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고 했다. 심지어 초고금리의 불법 사금융 광고도 버젓이 올라와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엔 유명 보석 브랜드 티파니앤코 제품을 최대 85% 할인 판매한다는 광고가 떴다.
공식 모델인 K팝 스타 블랙핑크의 멤버 로제 사진까지 도용해 마치 진짜 티파니앤코의 정식 세일처럼 광고를 꾸몄다. 하지만 돈을 내고 주문하면 실제 물건은 배송되지 않고, 결제 취소도 되지 않았다. 한국소비자원엔 해당 광고로 인한 피해 사례가 여러 건 접수됐다. 인스타그램에는 젊은 여성이나 연예인 사진을 도용해 불법적인 다단계나 투자를 권유하는 수많은 계정이 범람한다. 피해자들은 “신고해도 광고가 차단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가짜 뉴스나 사칭 계정은 한번 노출되거나 실수로 클릭하면, 알고리즘이 이를 사용자의 관심사로 여기고 노출을 강화하는 악순환에 놓인다. 이용자 행동을 반영해 광고 효과를 높이도록 알고리즘이 설계됐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페이스북 이용자 사이에선 ‘광고로 사칭 계정 사라지게 하는 법’까지 공유된다. 일본 숙박업소 료칸을 비롯한 해외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결제 직전에 사이트를 나오면, 소셜미디어가 이를 이용자 관심사로 착각하고 유명인 사칭 광고를 모두 료칸 광고로 바꾼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이렇게까지 알고리즘과 싸워야 하느냐”며 불만을 토로한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빅테크가 팬데믹과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검수 인력을 대거 해고하고, 검열을 인공지능(AI)에 맡긴 탓이 크다”고 했다.
이용자들이 급감하는 것은 가짜에 범벅 된 소셜미디어에 피로감을 호소하면서 기존 이용자들이 떠나는 반면, 새로운 젊은 층은 아예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10~20대가 외면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페이스북은 정치 콘텐츠에 관심이 높은 중장년층 플랫폼으로 급격히 늙어가고 있다. 대학생 이모(21)씨는 “페이스북이나 엑스에 접속하면 가짜 뉴스나 극단적인 정치적 주장을 담은 글이 떠 짜증이 난다”며 “친구들 사이에서 페이스북 콘텐츠가 화제가 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했다.
페이스북·엑스 등 소셜미디어 이탈 현상은 사용 기기나 앱을 민감하게 교체하는 한국 인터넷 이용자 성향과도 관련이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가짜 계정과 뉴스가 범람하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지만 한국은 변화에 민감할뿐더러 토종 IT 기업이라는 대체재가 있다”며 “예컨대 미국은 페이스북 메신저와 인스타 메신저 사용률이 높아 소셜미디어 대체가 쉽지 않지만, 한국은 카카오톡과 네이버 밴드 등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23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