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斷想

[22012]일자리를 구하는 데 있어 관심사나 적성을 따지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ironcow6204 2024. 1. 8. 10:57

 

 

 

“취미는 취미, 일은 일이죠. 이 둘을 왜 불필요하게 섞나요?”


4년제 사립대에서 프랑스어문학을 전공하고 올해 초 졸업한 이모(25)씨는 ‘연봉’을 최우선 순위로 고려해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이씨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스트레스 받는 건 마찬가지인데 돈 많이 주는 곳이 최고 아니냐”면서 “취미가 일이 되면 그저 괴로울 뿐”이라고 했다. 
국내 자동차 대기업의 판매 부서에서 일하는 박모씨(25)는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지만, 돈으로 보상받기 때문에 만족한다”고 했다. 
그는 “적성에 맞는 일을 해도 돈을 적게 벌면 그게 무슨 의미냐”고 했다.

 

 

<지난 8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일자리 박람회에서 취업을 앞둔 학생들이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는 데 있어 관심사나 적성을 따지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대신 ‘돈’과 ‘워라밸(근무 여건)’이 직업 선택 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됐다. 
20일 통계청에 따르면, 향후 1년 내 일자리를 희망하는 비경제활동인구(234만명)의 ‘취업 시 주요 고려 사항’을 조사한 결과, 1·2위가 근무 여건(31.5%)과 돈(26.8%)인 것으로 나타났다. 
둘 다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6년 이후 최고치다. 
3위는 적성이나 전공(22.9%), 4위는 일자리 안정성 및 사업체 규모(18.8%)였다. 
2018년까지만 해도 적성·전공(29.7%)을 고려한다는 답이 1위였다. 
하지만 2019년부터 추세가 역전됐고, 돈과 근무 여건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본지 취재에 응한 취업 준비생 대부분은 “일은 돈 버는 수단이지 삶의 목적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거나 직업이 삶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것은 구시대적인 직업관이라는 것이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경향은 아니다. 
1990년생 작가 시몬 스톨조프가 쓴 ‘워킹데드 해방일지(원제: The Good Enough Job: Reclaiming Life from Work)’는 지난 5월 출간 즉시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일을 삶 위에 두기보다 삶을 일 위에 두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여러분 자신은 아니다”는 내용이 젊은 세대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체감 경기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적성을 따지는 게 ‘사치’라는 말도 나온다. 
이른바 ‘먹고사니즘(생계 유지에 급급한 것)’이 가장 중요해진 것이다. 
최근 정리 해고를 당하고 구직 중인 IT업계 종사자 김모(34)씨는 “사업을 접는 스타트업이 늘면서 고용 안정성이 줄어든 데다 물가가 뛰면서 내 손에 쥐는 돈이 얼마인지가 그 무엇보다 중요해졌다”고 했다.(23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