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17]‘소수 인종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에 대한 위헌 여부 심리에 돌입하면서
ironcow6204
2023. 7. 28. 11:18
미 연방대법원이 1960년대부터 시행해온 ‘소수 인종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에 대한 위헌 여부 심리에 돌입하면서 미국 사회가 교육 부문에서 자유와 평등을 구현하는 방식을 놓고 뜨거운 논쟁 중이다. 이 정책은 미 대학 입시에서 동일한 SAT(미 수능시험) 점수를 받더라도 흑인·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들이 우대받도록 한 조치다. 대학마다 편차는 있지만 가산점 부여나 사실상 입학 비율(쿼터) 유지 등의 형태로 운영 중이다.
연방대법원이 이달 내로 헌법 위배 여부를 판단해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대법관 9명 중 2명이 실제 이 정책을 통해 대입을 거쳐 ‘성공의 사다리’에 올랐지만, 현재는 찬성과 반대로 각각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된 사연이 주목받고 있다. 미 ABC방송은 12일(현지 시각) “대법원 내에서 이념의 양극단에 있는 클래런스 토머스(보수) 대법관과 소니아 소토마요르(진보) 대법관이 모두 이 제도의 혜택을 받아 엘리트 반열에 올랐다”며 “그럼에도 극명하게 반대되는 이들의 의견은 이번 위헌 여부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진보 성향의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의 열렬한 지지자다. 뉴욕 브롱크스 슬럼가의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 최초의 히스패닉 대법관이 됐다. 아버지가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영어를 배우지 못한 탓에 8세까지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9세 때 세상을 떠난 뒤로 간호사인 어머니가 남매를 키웠다.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학교에서 기초 영어 공부를 시작했고, 방과 후엔 TV 법정 추리물을 보며 법조인의 꿈을 키웠다. 결국 미 최고 명문인 프린스턴대를 최우등으로 졸업했고, 예일대 로스쿨에 합격했다.
소토마요르에게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은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이루게 해준 수단이다. 그는 지난 2014년 예일대 모교 연설에선 “이 제도가 없었다면 프린스턴, 예일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자서전 ‘나의 소중한 세상’에서는 “좋은 교육이라는 ‘경주’(race)가 있는지도 모르는 학생들을 출발선상에 데려다 주는 것이 미국 제도의 힘”이라고 했다.
반대로 역사상 두 번째 흑인 연방대법관으로서 보수 성향인 토머스 대법관은 소수 인종 우대 정책에 수차례 부정적인 의견을 밝혀왔다. 그는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 조지아주(州)에서 부모 없이 할아버지 손에서 어렵게 자랐다. 신세를 한탄하는 그에게 할아버지는 “인종을 탓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고 말했다. 절치부심 끝에 매사추세츠주 명문 홀리크로스 칼리지를 졸업한 뒤 예일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토머스도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의 혜택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 제도로 인해 취직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고 주장했다. 대형 로펌들이 그의 능력을 의심해 번번이 퇴짜를 놨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 42번의 로펌 면접에서 불합격했다고 폭스뉴스는 전했다. 토머스는 회고록 ‘내 할아버지의 아들(My grandfather’s son)’에서 “소수 인종 우대 제도는 내 업적을 ‘인종에 의한 특혜’로 만들어버렸다”고 했다. 그는 “나는 담배 포장지에서 떼어 낸 15센트(약 190원)짜리 가격표를 예일대 졸업장 액자에 붙여 지하실에 박아뒀다”면서 “예일 졸업장이 백인과 흑인에게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어렵게 배웠다”고도 했다.
이런 토머스의 경험은 ‘헌법은 인종에 근거한 분류 자체를 금지하고 있는만큼, 이 정책도 폐기돼야 한다’는 입장으로 이어졌다. 토머스는 2020년 한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인종에 따라 시민들을 분리할 권리가 헌법 어디에 나와 있는지 보여달라”고 했다. 그는 “인종적 온정주의는 다른 어떤 차별만큼이나 해롭다”고도 했다.
반면 소토마요르는 교육의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한 소수 인종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는 것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인종 간 빈부·교육 격차가 여전히 큰 상황에서 이 제도를 폐기하는 것은 ‘기만’이라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등은 “두 대법관 모두 인종차별과 가난이라는 유사한 경험을 갖고 있음에도 그들이 세상에 반응하는 방식은 매우 달랐다”고 했다. 소토마요르는 지난 2017년 아스펜 연구소 대담에서 “(토머스는) 혼자의 힘으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나는 일어서기 위해 때론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2006년과 2013년 이 정책의 존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번 심리는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이란 단체가 하버드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를 상대로 “아시아계 학생들이 흑인·히스패닉 학생들과 비교해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제기했다. 아시아계가 학업 수준이 월등히 높음에도 합격 비율은 과도하게 낮다는 것이다. 이 단체 소송은 1·2심에선 모두 기각됐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흑인·라틴계의 표심(票心)을 얻기 위해 분주한 가운데 이번 결정이 인종 간 갈등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작년 6월 미 대법원의 ‘낙태권 폐기’ 판결 같은 논란으로 커질 수 있다.(23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