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斷想
[21775]클래식 연주자들은 ‘보는 대상’이 아니라 ‘듣는 대상’이라는 예전의 뿌리 깊은 통념이
ironcow6204
2023. 6. 23. 09:05
오는 12일 내한 독주회를 갖는 러시아 여성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37)는 2010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다.
조성진의 ‘콩쿠르 5년 선배’인 셈이다. 그에겐 연주할 때 독특한 습관이 있다.
드레스 대신 검은 재킷과 바지를 즐겨 입는다는 점이다.
그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패션 스타일에 얽힌 사연을 털어놓았다.
“15년 전쯤 아름다운 드레스 차림으로 라벨의 까다로운 피아노곡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곡과 의상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불편해졌다. 흡사 잘못된 배경음악이 흐르는 영화를 보는 듯했다.”
그 뒤로는 무대에서 드레스 대신 바지를 고집한다.
그는 “연주할 때 시각적으로 불필요한 요소를 없애는 것이 음악적 집중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클래식 연주자들의 ‘드레스 코드’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남성 연주자들은 펭귄 꼬리를 연상시키는 연미복과 나비넥타이, 여성은 화려하거나 우아한 드레스 차림이 불문율로 통했다.
하지만 ‘격식 파괴’의 21세기에는 연주자의 의상도 한층 자유분방해지고 파격적으로 변모한다.
연주자의 개성과 도발, 정치적 의사 표명과 패션 산업과의 협력까지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중국 피아니스트 유자 왕은 드레스 대신에 미니스커트와 하이힐로 화제와 논란을 몰고 다닌다.
하지만 “쇼팽과 스크랴빈의 음악이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라면 의상은 왜 그래선 안 되는가?”라고 반문한다.>
중국 피아니스트 유자 왕(王羽佳·36)은 긴 드레스 대신에 미니스커트와 하이힐로 무대에 올라서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몰고 다닌다.
해외 평단에서도 찬반은 극명하게 갈린다.
워싱턴포스트는 “젊은 여배우들 사이에서도 낯설지 않은 패션”이라고 감쌌지만, 반대로 월간 문예지 뉴크라이티리언(New Criterion)은 “스트리퍼의 의상”이라고 불편함을 드러냈다. 정작 본인은 개의치 않는다.
지난해 본지 인터뷰에서 그는 “쇼팽과 스크랴빈까지 음악은 시각적이고 원초적이고 본능적인데, 왜 연주 의상은 그래서는 안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유자 왕 같은 도발은 아니더라도 남다른 의상 감각을 무대에서 뽐내는 ‘패셔니스타’ 남성 연주자도 적지 않다.
프랑스 피아니스트 장이브 티보데(61), 영국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61), 베네수엘라 출신의 남성 소프라노 사무엘 마리뇨(30) 등이 여기에 속한다.
허프는 최근 국내 출간된 에세이 ‘한 번 더 피아노 앞으로’에서 “나는 특별한 옷으로 갈아입을 때, 청바지를 무대에서 입기보다 탈의실 의자에 걸쳐둘 때 연주가 더 좋아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리뇨 역시 지난 2월 첫 내한 무대에서 오페라 가수보다는 마이클 잭슨을 연상시키는 빨간 반짝이 의상을 입고 BTS의 ‘다이너마이트’를 바로크풍으로 편곡한 앙코르 때는 춤추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허리띠를 두른 지휘자 옥사나 리니우(왼쪽). 빨간 재킷으로 무대 위에서 춤추는 남성 소프라노 사무엘 마리뇨(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