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오후 2시쯤 서울 동대문구의 서울시립대학교 국제교육원 건물 앞. ‘헌혈로 따뜻한 세상을 함께 만듭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린 헌혈 버스 옆으로 치킨과 피자 냄새를 풍기는 차량 한 대가 서 있었다. 헌혈하는 대학생들에게 한 끼 분량의 치킨·피자를 요리해주는 차량이었다. 하지만 대학생 2~3명만 관심을 기울일 뿐 버스 앞은 한산했다. 이날 7시간 동안 헌혈 버스를 찾은 대학생은 45명이었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헌혈 버스 1대당 평균 헌혈자 수는 28명 정도다.
대한적십자사는 코로나로 급감한 헌혈량 회복을 위해 굽네 치킨의 협조로 지난달부터 ‘치킨·피자’ 무료 이벤트를 열었지만, 대학생들의 참여가 생각보다 크지 않은 상황이다. 헌혈 버스 인근에서 만난 대학생들은 “혈액이 부족한 상황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거나 “왜 헌혈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김동민(19)씨는 “고등학생 때 1년에 100일 정도밖에 학교를 못 가서 헌혈에 참여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며 “친한 친구들도 별로 관심 없고 참여를 안 해 나 역시도 선뜻 해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는 “헌혈하면 어지럽다는 등의 얘기 때문에 헌혈에 거부감이 들고 꺼려진다”고 했다. 현 대학생들은 코로나의 영향으로 집단 헌혈이 크게 줄어든 동안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집단 헌혈을 경험해본 사람들의 재헌혈률이 높은데, 이런 경험이 없는 대학생들의 헌혈 거부감이 크다고 한다.
대한적십자사의 이번 ‘치킨·피자’ 프로젝트는 고물가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을 겨냥한 마케팅이었지만, 이런 전략도 효과가 작다. 정부는 최근 고물가로 한 끼 밥을 먹기 부담스러운 대학생들을 겨냥해 ‘1000원 학식’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생은 “헌혈을 한다는 건 누군가와 밀폐된 장소에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코로나 이후 이런 행동 자체가 무섭다”며 “특히 피를 뽑는 행위로 무언가 질병을 옮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고 했다.
20대의 헌혈 참여가 저조하자 헌혈 수급량도 적정량을 밑돌고 있다. 안정적 혈액 수급을 위해선 하루 5400명 이상의 헌혈이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한 달 동안 헌혈자 수는 일평균 4700명 수준이다. 지난 2018년 38만명이던 1~4월 20대 헌혈자 수는 올해 같은 기간 31만명으로 줄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코로나로 인해 고등학교 시절 헌혈에 참여할 기회가 부족했던 이들이 대학생이 되면서 헌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몰라 참여를 안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20대들이 헌혈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23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