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斷想

[21754]죄악세를 부과하는 다른 기호품인 술·담배와 달리 마약은 중독성이 너무 강해

ironcow6204 2023. 6. 7. 09:43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마약과의 전쟁’에도 마약 중독·사망자가 급증하는 미국에선 최근 대안으로 마약 양성화를 도입하는 주가 늘고 있다. 
처벌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마약 소비를 일정 부분 합법화해 양성화하고 세금을 물려 세수도 늘리자는 방안이다. 
마약 양성화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이들은 미국의 자유시장경제 옹호 경제학자들이었다. 
대표적으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1912~2006) 미 시카고대 교수가 1990년대 마약 합법화를 앞장서 주장했다.

 

 

<1991년 한 인터뷰에서 대마초 등 마약 양성화를 주장하고 있는 고(故) 밀턴 프리드먼 시카고대 교수>

 

 


그는 마약을 법으로 금지할 경우 위험한 불법 거래만 늘어나 범죄 발생 가능성이 커지고 대형 마약 카르텔이 시장을 장악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마약을 술처럼 자유 시장에서 합법적으로 거래되도록 하면 수요·공급·가격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통제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런 가운데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제프리 마이런 하버드대 교수가 죄악세(sin tax)라는 보다 구체적인 마약 통제 ‘도구’를 제안했다. 
그는 2005년 논문에서 대마초를 양성화하면 주 정부와 연방 정부의 지출을 합쳐 77억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7조8000억원)를 절약할 수 있고 세금은 연간 최대 62억달러(약 6조2000억원)를 걷을 수 있다고 밝혔다. 
전면 금지보다는 죄악세라는 높은 세금을 부과해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것이 사회 전체로 보면 훨씬 이득이라는 주장이다. 
프리드먼을 포함한 500명 이상의 경제학자들이 이 논문을 지지한다고 서명했다.


이런 경제학 이론을 토대로 미국 각 주들은 중독성이 비교적 약한 대마초를 중심으로 잇따라 마약 합법화 및 죄악세 부과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 내 50주(州) 가운데 21주가 개인의 기호용 대마 사용을 허가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 
마약 중독자가 줄기는커녕 마약 중독으로 인한 사망자가 늘고 관련 범죄까지 증가하는 상황이다.

 

 




2016년 대마초에 이어 2020년 코카인·헤로인 등 다른 마약들도 허용한 오리건주가 대표적인 사례다. 
오리건주는 기호용 대마초 등을 합법화하는 대신 20%의 세금을 물리는 죄악세를 도입했다. 
그러자 합법화로 대마초를 구하기 쉬워지면서 마약에 일단 맛을 들인 사람들이 더 강력한 마약을 찾기 시작했고, 시장이 커지자 불법 마약 조직이 대거 유입돼 범죄가 급증했다. 
2021년 인구 10만명당 오리건주의 마약 사망자는 27명으로 2019년(14명)보다 93%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 전역의 마약 사망자 증가율(14%)보다 훨씬 높다. 
오리건주 최대 도시 포틀랜드의 살인 사건은 2021년 92건, 2022년 101건으로 매년 기록을 경신 중이다.

 

 

<지난 3월 미 오리건주 최대 도시인 포틀랜드의 한 거리에 쓰러져 있는 마약 중독자를 경찰이 단속하는 장면>

 

 

과거 경제학자들이 중독성이 매우 강한 마약의 특성을 간과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일중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죄악세를 부과하는 다른 기호품인 술·담배와 달리 마약은 중독성이 너무 강해 세금을 통한 억제가 미미하다”고 말했다. 
세금으로 가격을 다소 올려봤자, 마약 중독자들은 보통 다른 소비를 줄여서라도 구입하려 하기 때문에 소비가 줄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대마초보다 더 싸면서도 효과가 강한 펜타닐 등 마약성 진통제의 유행도 과거 경제학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다. 
김일중 교수는 “죄악세로 마약을 줄인다는 경제학계의 발상은 펜타닐 등 대마초의 값싼 대체품들이 도처에 널려 있게 된 지금의 상황에선 무용지물”이라고 했다.(23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