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법 199조 규정은 판사들이 민사 사건의 1·2·3심을 각각 5개월 이내 선고하도록 하고 있다. 과거에도 이 규정을 지키지 않은 재판이 적지 않았지만, 판사들은 별로 압박감을 느끼지 못했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 민사소송법 199조를 ‘훈시(訓示) 규정’으로 해석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를 두고 변협 대변인을 지낸 최진녕 변호사는 “재판 지체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이런 ‘재판 지체’ 현상이 최근 몇 년간 더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 출범 이후와 맞물린다. 다수의 현직 판사들과 변호사들은 ‘재판 지체 심화’의 원인을 김 대법원장에서 찾았다. 그들은 “김 대법원장은 ‘고법부장 승진제’를 폐지해 재판을 열심히 할 동기를 없앴다”면서 “또 판사 투표를 통한 ‘지방법원장 추천제’를 도입해 후배가 사건을 쌓아 놓고 있어도 법원장이 되려면 잘 보여야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놨다”고 지적했다.
과거 법원은 법원장·수석부장판사 등이 법원 내 구축된 ‘통합재판지원 시스템’을 통해 재판을 심각하게 지체하는 판사를 파악하고 개별적으로 주의를 주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에서는 이런 관행이 ‘사법행정권 남용’이란 불법행위로 인식되면서 금기시된 상태다. 현재도 ‘통합재판지원 시스템’이 있지만, 통계 파악용으로 활용되는 정도라고 한다. 한 부장판사는 “신속한 재판을 위한 사법행정과 재판 내용에 관여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며 “판사의 방종과 재판의 독립을 착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신속하고 정확한 재판 진행을 하는 판사들이 대우받는 시스템도 아니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일을 안 해도 65세까지 똑같이 대우해주는 곳에서 누가 굳이 열심히 일하겠느냐”고 했다. 이는 법관 사회의 워라밸 확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9년 배석판사들은 ‘1주에 3건 이상 선고하지 않는다’며 암묵적 기준을 만들었다. 이제는 부장판사들도 “배석들이 못하겠다고 한다”면서 이런 분위기에 합류하고 있다고 한다. 업무 부담이 큰 형사합의부에 배치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인사(人事)를 앞두고 휴직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230227)
☞민사소송법 199조
민사소송법 199조는 ‘1심 판결은 소송이 제기된 날부터, 2· 3심은 소송기록을 넘겨받은 날부터 5개월 이내에 선고한다’는 내용이다. 헌법상 권리인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입법화한 것이다. 그런데 헌재는 1999년 이를 ‘훈시 규정’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