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아들을 키우는 정모(45)씨는 난생처음 아이 학교에 민원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1학년부터 5년 내내 여자 담임선생님이어서, 이번엔 남자 담임선생님 반에 배정받게 하고 싶었다. 정씨는 “학교에선 ‘비슷한 민원이 많아 다 고려하기 어렵다’고 했다”면서 “7개 반 중 한 반은 남자 선생님이 배정될 것이라 하니 로또 당첨을 바라는 심정으로 기도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25일 대구 수성구 동천초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과 선생님이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며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올해 서울 지역 초등학교 교사 임용 합격자 114명 중 남자가 11명(9.6%)에 그치면서 교단 여초(女超) 현상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교단의 여초(女超) 현상이 계속 심화하고 있다. 27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서울 국·공립 초등학교 교사 임용시험 합격자 114명 중 남성은 11명, 9.6%에 불과했다. 작년(10.6%)보다 1%포인트 더 떨어졌고, 최근 10년래 처음으로 남성 합격자 비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여성 선호도가 높은 직종인 데다 임용시험에서도 여성이 강세를 보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방학에 쉬고 상대적으로 이른 퇴근이 가능해 자녀 육아에 유리한 점 등도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 요인이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교단 여초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작년 4월 기준 전국 남교사 비율은 초등학교 22.8%, 중학교 28.4%, 고등학교 42.9%였다. 남자 교사(교장, 교감 등 제외)가 한 명도 없는 학교도 전국에 107곳이나 된다. 2018년 77곳, 2020년 97곳에서 계속 늘고 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여성 담임교사를 배정받는 사례도 흔해지면서 학부모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 남녀 성 역할을 고르게 익히고 다양한 시각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걱정이다. 초등 6학년 딸을 둔 김수정(41)씨는 “1~4학년엔 여자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다가 5학년 땐 남자 담임선생님을 만났는데, 아이가 두 달 동안 선생님과 눈도 못 마주쳤다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며 “주변을 보면 딸을 둔 가정에서도 가족 외 남성과 함께 사회생활을 배울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6년 중 최소 1년은 남자 담임선생님과 공부하길 원한다”고 했다.
각 교육청에선 매년 ‘남교사 모셔오기 경쟁’도 일어난다. 수도권 한 교육지원청의 인사 담당자는 “우리 청에 배정되는 남교사는 매년 2명 정도라, 신규 초등교사를 발령할 시기가 되면 지역 내 학교에서 남교사를 보내달라는 민원 전화가 빗발친다”고 전했다.
교단의 여초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교내 남녀 차별 문제에 대한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매번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업무들은 소수의 남교사에게 집중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남교사와 여교사 간 젠더 갈등이 일어나는 일도 다반사다. 3년 차 초등교사 최모(29)씨가 근무하는 학교엔 교사 45명 중 남교사가 최씨 포함 3명뿐이다. 심지어 이 중 한 명은 올 2학기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최씨는 “요즘 같은 시대에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코로나 때 학생들에게 검사 키트를 나눠주는 일부터 학예발표회 때 의자 나르기, 운동장 제설작업 등 힘든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최근엔 업무 부담이 크게 늘어난 학교 폭력이나 ADHD(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 자폐증 등 특별관리가 필요한 학생 관리도 모두 남교사의 몫이 되었다”며 “아이들을 위해선 교단의 성비 균형이 중요하지만, 이와 동시에 남자라는 이유로 고된 업무를 떠맡기는 학교 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23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