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읊어 보니
[3123]낙서(落書) / 김종제
ironcow6204
2023. 3. 17. 14:55
낙서(落書)
김종제
담벼락 같은 세상에
누가 아무렇게나 갈겨 쓴
글 같은 것들
너를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제멋대로 그려 놓은
기호나 부호 같은 것들
아무도 해석할 수 없게 써 놓은
암호 같은 것들
눈 앞에
저렇게 가득히 서 있는 것들
나무 빼곡하게 들어선 숲 같은 것들
물 가득 흐르는 강 같은 것들
그 위로 날아가는 새들
그 속으로 헤엄치는 물고기들
지상에 누가 함부로 풀어 놓은 것들
예고도 없이 흩날리는 눈발 같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같은
뜨고 지는 일월(日月)이나
변함없는 천지(天地) 같은 것들
지울 수 없게
아로새긴 *연비(聯臂) 같은 것들
두 다리로 걸어가는 것들
네 다리로 달려가는 것들
대지를 돌아다니며 낙서하는 것들
동굴 같은 세상에
너를 갖고 싶다고 원한다는
말 대신에
손으로 발로 마음으로
그려 놓은 무늬같은 것들
*연비(聯臂) - 사랑하는 남녀끼리 몸의 은밀한 부분에 하는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