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전으로 가는 길목 이십년째 잡화를 하는 신세계슈퍼 이층에 단란주점을 낸 소연이가 내 첫사랑이다. 지금은 만리장성이라는 중국집을 냈지만 장터 포주집 아들로 내가 성, 성 하며 쫓아다니던 어릴 적엔 순 건달로, 내게 그짓은 콩알을 넣고 해야 제맛이라고 가르쳐주던 덕기형과 결혼한 그 친구가 내 첫사랑이다. 나와 내 친구와 또 한 친구까지를 관통하고 다녀 지금껏 팽팽한 삼각을 유지해주는 그 피멍 같은 계집
장성 어느 재에서 한번만 주라고 한번만 주라고 탱탱 부은 내 보람을 개새끼야 개새끼야 하고 밀쳐내던 그 콩닥숨 단내가 탱자내음 같던 가시내 왜 남들은 다 줘놓고 나만 안 주냐고 열두 시간 비지땀 애걸해도 니가 봤냐 니가 봤냐며 꼬막처럼 닫힌 속살 열지 않던 짜디짠 벌교 가시내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제는 더이상 소녀가 아닌 내 첫사랑. 선거 때면 똘마니들 동원도 한몫하고 재 너머 읍내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와 누구누구의 신장개업 구상까지도 환히 꿰는 영민한 읍내 형수 찾아가면 원없이 술 내주고 처진 가슴 부벼 날 꼬일 줄도 아는 그 희한한 내 첫사랑
지금도 홍계리 그 외등은 벌겋게 타오르고 있을까 장미꽃 넝쿨처럼 가시를 치며 담을 넘던 세 자매의 웃음소리 가쁜 숨쉬며 나는 어디쯤 달려 왔는가 굉음처럼 지나가버린 세월 긴 밤내 썼던 편지를 쫙쫙 찢어 날리던 그 철로변 꽃잎들은 다 날아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