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斷想

[21569]시민을 볼모로 잡는 이런 방식의 시위를 한 게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경찰이

ironcow6204 2023. 1. 11. 12:38

 

 

 

“출근이 너무 늦어져 심장이 떨립니다. 지하철 시위 때문에 매일 일찍 나오는데, 이 때문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더 일찍 맡겨야 합니다. 우리 아이는 왜 피해를 봐야 하나요?”

 

 

<지난 10일 오전 8시쯤 서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승강장에서 휠체어를 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관계자들이 열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기관사와 주변 승객들에게 수신호로 이를 알려주고 있다.>



지난 9일 오전 8시 10분쯤 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 방면 열차 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로 열차 출발이 10분 안팎 지연되자 기다리다 못한 한 여성이 전장연 관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전장연 측이 하는) 얘기를 이미 잘 듣고 있는데, 꼭 열차를 지연시켜야 하나요?”라고 따졌다. 
11일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에서 열린 시위 때도 전장연 측을 향해 “고객과 한 약속 시간에 늦으면 당신들이 책임질 거냐”고 하는 등 항의하는 승객이 여럿 있었다.


올해 수도권 지하철 출근길에선 이런 장면이 수시로 보였다. 
전장연이 ‘세계 장애인의 날’인 작년 12월 3일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한다며 이른바 ‘출근길 지하철 타기 시위’를 1년 가까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전 7~9시 열차 출입문에 휠체어를 세워 놓거나, 바닥을 기어서 열차에 타는 방식 등으로 지하철 출발을 지연시킨다. 
11일 기준 전장연은 총 46차례에 걸쳐 이런 출근길 시위를 했다. 
작년 12월 3일부터 이달 11일까지 주말과 공휴일을 뺀 근로일은 총 233일이었다. 출근하는 날 5번 중 1번은 전장연 시위가 열린 셈이다.

출근길 시위 외에도 전장연은 이 기간 14차례 지하철 출발을 지연시키는 시위를 했다. 
출근길 시위와 합해 총 60번에 걸친 전장연 시위 때 지하철 평균 지연 시간은 하루 56분에 이른다.

 

 




시민들이 체감하는 불편은 매우 크다. 
지난 9일까지 약 11개월간 서울교통공사가 접수한 전장연 시위 관련 민원이 8065건에 이를 정도다. 
지난 10일 오전 9시쯤 한 시민이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5호선 지하철 고덕역에서 ‘다음 열차가 84분 뒤에 도착한다’는 내용이 떠 있는 전광판 안내 글귀를 올리자 “정말 너무한다”는 취지의 댓글이 잇따라 달렸다. 
시위 날마다 지하철역 인근 버스나 택시 정류장에 수십 명이 몰려 기다리는 일도 수시로 벌어진다.


전장연 관계자들은 “장애인 권리를 보장하는 예산이 반영되지 않고 있어 시민 여러분께 죄송하지만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이를 보장하라고 요청하기 위해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목소리를 낼 최후의 수단으로 이런 시위를 택했다는 것이다. 
11일 시위에서 한 참가자는 “장애인이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서 불편하다면 그 불편을 장애인들이 아닌 국가에 말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시위가 1년 가까이 이어지자, 이들에 대한 시민들 시선도 차가워지고 있다. 
전장연 시위가 열리는 날마다 지하철 안에선 종종 “이게 무슨 짓이냐” “여기 있는 사람들도 출근해야 먹고살 거 아니냐” 등 시민들의 호소나 항의가 잇따른다.


정부나 경찰 등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시민도 많다. 
직장인 이모(47)씨는 “시민을 볼모로 잡는 이런 방식의 시위를 한 게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경찰이 왜 가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면서 “시민 불편을 감안해서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전장연과 협상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후엔 지하철에 사람들이 가득 차는 데에 공포감을 느끼는 시민도 나타나고 있다. 
전장연이 지하철 시위를 하면,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들은 그들이 탄 열차 객실에는 승객을 더 태우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 
출근길 사람들이 몰리면서 나머지 객실에 꾸역꾸역 올라타다 보니 지하철은 평상시보다 밀집도가 높아지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112·119 신고까지 들어오기도 한다.


매일 4호선을 타고 출퇴근하는 김모(28)씨는 “전장연이 열차 안으로 들어오면 그 칸이 매우 혼잡해져 다른 칸으로 이동하는데, 다들 그렇게 넘어와 그 칸에도 결국 굉장히 사람이 많아진다”며 “이태원 참사 후 인파가 몰리는 것이 무서운데 다른 방법으로 출퇴근해야 하나 고민”이라고 했다. 
실제 지난 9일 5호선 여의도역에서 “시위로 열차가 지연되면서 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 갇혀 있다” “답답해서 숨을 못 쉬겠다” 등의 내용으로 112 신고가 들어와 경찰과 소방이 현장 출동한 일도 있었다.


전장연 시위에 대한 자구책을 마련하는 시민도 많다.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인근에서 혼자 사는 김모(26)씨는 지난 7일부터 친구 집에서 더부살이한다. 
프로젝트 계약직인 그는 지난달 25일 전장연 시위 때 회사에 한 시간이나 늦어서 크게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전장연 시위를 하는 날은 출근에만 1시간이 걸려, 이번 주 내내 전장연이 시위한다는 소식에 친구 집으로 옮긴 것이다. 
김씨는 “수시로 지각하는 사람이란 인상을 안 주고 싶어서 당분간 친구 신세를 지기로 했다”고 말했다.(22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