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斷想

[21497]실제로 우리나라는 기업 경영을 잘해서 기업 가치가 상승하면 상속세 부담이

ironcow6204 2022. 11. 24. 14:33

 

 

 

2015년 당시 공기업에 다니던 여상훈(37)씨는 가업(家業) 승계를 위해 아버지가 1998년 설립한 문구 유통업체 빅드림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여씨가 경영에 참여한 뒤 회사는 온라인 판매에 진출해 매출이 커졌고, 문구류 직접 제조에도 나섰다. 
지난해 용인에 문구 제조 공장도 지었다. 
2014년 13억원 수준이던 매출이 지난해 57억원으로 커졌고 직원도 3명에서 20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회사의 성장은 여씨가 준비해온 가업 상속을 도리어 불리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문구 제조가 주력 사업이 되자, 업종이 문구 도소매업에서 제조업으로 바뀌어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현재의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업종을 10년 이상 유지해야 상속 재산 중 200억원(20년 300억원·30년 500억원)을 과세 대상에서 공제해주는데, 빅드림처럼 업종 변경이 이뤄지면 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여씨는 “공장 짓고 회사를 키워 사람을 더 고용했더니 가업상속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들었다”며 “사업을 열심히 확장했다는 이유로 최소 수십억 원에 이르는 세금 혜택을 못 받는 불이익을 받을 줄 알았다면 이런 노력을 쏟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명 기기를 만드는 A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코로나 사태로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전기 시공 매출이 급증했다. 
이 때문에 주 업종이 제조업에서 건설업으로 바뀌어 가업 승계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A사 대표는 “기업 환경은 계속 변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경우 승계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본격 도입됐지만, 업종 전환 제한과 같은 걸림돌이 많아 중소기업들이 이 제도 혜택을 보는 경우가 드물다. 
전국적으로 가업 승계를 앞둔 중소 제조·서비스 기업 대표가 12만명에 육박하는데, 정작 이 제도를 이용하는 기업은 한 해 100여 곳에 불과하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독일·일본은 가업 승계 세제 지원 시 업종 유지 같은 제한이 없다”며 “건실한 중소기업들이 유지되며 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국도 가업 승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섬유업체 고원니트의 고혜진(37) 대표는 2013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회사를 물려받게 됐다. 가업상속공제 신청 후 7년 반 동안 고용·자산 유지 등의 사후 관리 의무를 잘 지켜오다가 2020년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원단사업은 수출 주문이 줄줄이 끊겼다. 고 대표는 “10년 동안 직원 고용을 유지해야 하는데, 회사 사정이 너무 좋지 않아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가업상속공제 기준에서 탈락한 그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집을 팔고, 은행 대출까지 받았다. 고 대표는 “코로나로 회사 경영이 너무 힘들어 개인 돈을 많이 쏟아부었는데, 상속세까지 겹치니 사업을 괜히 물려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업상속 요건이 까다롭다 보니 가업상속공제를 이용하는 기업도 적고, 고씨처럼 사후 관리 의무를 지키지 못해 상속세를 다시 추징당하는 경우도 12.3%에 달할 정도 빈번하다. 
기업 승계가 쉽지 않다 보니, 중소기업 대표들은 점점 늙어가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10년만 해도 중소 제조기업 대표자의 평균 연령은 50.6세였는데, 2020년에는 54.9세였다. 
특히 60세 이상 비율은 2010년 13%에서 2020년 30.7%로 배 이상이 됐다. 
중소 서비스·제조업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60대 이상 CEO는 11만8000명, 70대 이상은 2만1500명에 달한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지금처럼 1년에 100건씩 가업승계가 이뤄지면 70대 CEO들이 가업승계를 다 하려면 200년이 걸려도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울산에 있는 매출 100억원의 자동차 도금업체 대표 B씨(37)는 가업을 잇지 않을 계획이다. 
올해 66세인 창업자 아버지는 곧 은퇴할 예정이지만 그는 승계를 포기하고 새 사업을 할 예정이다. 
B씨는 “사전 증여를 받아 회사를 크게 키우고 싶지만, 세금 부담이 너무 커 포기했다”며 “도금업 같은 3D 산업은 상속세를 대폭 줄여줘도 2세들이 승계를 안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투자비는 끊임없이 들어가고 노사 문제도 만만치 않은 데다 인명 사고라도 나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감옥에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업력 10년 이상 된 중소기업 600사를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들은 가업승계의 어려움(복수 응답)으로 막대한 조세 부담(79.8%), 정부 지원 부족(29.6%), 후계자 경영교육 부재(24.8%) 등을 꼽았다.


욕실 부속품 제조업체인 와토스코리아 송공석(70) 대표는 5년 전부터 사업을 확장하고 싶었지만, 승계 문제로 주저하고 있다. 
현재 주력제품인 플라스틱 자재에서 절수형 변기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싶지만 이 경우 가업상속공제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30년 이상 기업을 운영해왔기 때문에 상속재산 500억원에 대해 상속세 공제받을 수 있지만, 회사를 키우거나 업종을 변경하면 상속세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진다”고 말했다. 
자녀들도 “사업 확장을 하지 마시라. 차라리 우리가 상속받은 뒤 하겠다”며 아버지를 말리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이 회사는 직원수 115명에 연매출 200억원. 
사업을 확장하면 최소 1000명 고용에 연매출 2000억~3000억원이 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상속세 부담 때문에 추가 투자를 꺼리는 상황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기업 경영을 잘해서 기업 가치가 상승하면 상속세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진다. 
한국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둘째로 높고, OECD 평균(26.6%)의 2배 수준이다. 
기업인들은 “기업 경영 잘한 경영자들이 오히려 상속에서 불이익 보는 구조”라며 씁쓸해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기업들이 승계 전후에는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업가치를 오히려 낮게 유지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까지 발생한다”며 “우리도 가업승계의 경우 상속세 부담을 해외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22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