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강모(68)씨는 이달 초 경주 불국사에 갔다가 ‘만 70세 이상부터 문화재 관람료 무료’라고 적힌 걸 보고 의아해했다. 은퇴한 후 평소 전국 곳곳의 절을 자주 다닌다는 그는 “작년에 왔을 때 공짜로 들어갔는데 올해는 노인 기준이 70세로 바뀌었더라”면서 “노인이 많아진다더니 조만간 지하철이나 버스의 무료 나이 기준도 높아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런 변화는 조계종이 전국에 있는 일부 사찰에 들어갈 때 관람료를 면제하는 경로 우대 기준을 ‘만 65세 이상’에서 ‘70세 이상’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종단은 올 1월부터 이를 시행했지만 적용 시기는 각 사찰 사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했다. 지난 4월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된 후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이 사실이 최근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노인복지법에 따라 65세 이상부터 고령자인 노인으로 분류해 복지 혜택 등을 지원한다. 하지만 고령화로 65세 이상 인구가 빠르게 늘면서 재정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다 보니 먼저 민간에서 노인 기준을 70세로 올려 잡는 곳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조계종이 경로 우대 기준을 올린 것을 두고 “아무리 민간이라도 다른 곳과 기준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과 “고령화 시대에 불가피한 일”이라는 의견이 엇갈린다.
조계종 측은 사찰은 공공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그간 쭉 만 65세 이상 경로 우대 정책을 써왔지만 별도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노인복지법상 경로 우대가 적용되는 공공시설은 국가에서 할인해준 만큼 지원금을 주지만, 사찰의 문화재 구역은 공공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계종 측은 “문화재 관람료를 면제받은 사찰 이용객은 경로자, 유공자, 지역 주민 등을 포함해 매년 500만명 이상인데, 종단은 각종 지원을 받지 못하는데도 배려와 존중의 의미로 그동안 무료 입장을 시행해왔다”고 했다.
무료 혜택 노인 기준을 올리려는 움직임은 조계종뿐만이 아니다. 지난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몇몇 후보자가 지자체의 재정 부담을 감안해, ‘고령자 시내버스 무료’나 고령자 지원금 등 노인 대상 공약을 내면서도 그 기준을 만 70세 이상으로 잡기도 했다. 유명 관광지 중 한 곳인 강원도 춘천의 남이섬에서도 입장권 우대 요금을 고령자의 경우 만 70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내국인 고령 인구는 892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7.8%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화 사회’ 진입 시점은 3년 뒤인 2025년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처럼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과거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공식적으로 노인 기준을 현재 만 65세에서 더 높이자는 의견도 종종 나왔다.
예컨대 노인 무임승차가 적용되는 서울 지하철의 경우 65세 이상 승객에게 매년 2000억원 이상이 사용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경로 이용객을 위해 2020년 약 2161억원, 2021년 약 2311억원이 투입됐다. 이 때문에 무임승차 나이 기준을 더 올리자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견도 많아 이런 주장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못했다.
이와 관련,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령화·저출산 사회에서 경제활동인구의 부양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인의 기준 나이를 올리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노인 실태 조사를 봐도 사람들이 스스로를 노인이라고 인식하는 나이도 70세를 넘어섰다”고 했다. 하지만 대한노인회 관계자는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적으로 정해진 노인 기준을 바꾸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22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