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斷想

[21361]코로나 팬데믹으로 촉발된 원자재 부족과 공급망 병목에 대응해 각국이 전략 물자 수출을

ironcow6204 2022. 6. 23. 14:14

 

 

 

세계적으로 식량 공급이 부족해지고 가격이 급등하면서 각국이 곡식과 식자재 수출 문을 속속 걸어잠그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가속화된 탈(脫)세계화 흐름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와 맞물리면서 식량·비료 등을 무기화하는 극단적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 인도 북부 펀잡 지방에서 농부들이 밀을 수확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밀의 세계 무역로가 줄줄이 차단되면서 세계 밀값이 40% 이상 뛰었다. 
세계은행과 유엔 등 국제기구는 글로벌 식량난에 따른 인명 피해와 국제 정세 불안을 우려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일(현지 시각) 식품과 비료를 대상으로 한 전 세계 각국의 수출 규제 건수가 예년엔 10건 이내였는데 올 들어 4개월 만에 벌써 47건에 달했다고 스위스 생갈렌 대학 국제통상 연구팀의 추적 결과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 중 43건이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나온 것이었다.


이 같은 수출 규제는 전쟁 당사국에서 시작해 한두 달 새 세계 모든 대륙으로 퍼졌다. 
우선 전쟁 주범인 러시아와 그 동맹 벨라루스가 밀 수출을 금지하고, 이어 비료와 설탕, 곡물 수출을 금지했다. 
서방의 경제제재에 대한 보복 조치 성격이 강했다. 
피해국인 우크라이나도 폭격으로 파괴된 민생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 수출품인 해바라기씨유와 밀, 귀리, 소 수출을 제한했다.

 

 




전 세계 밀 수출의 4분의 1 이상을 맡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 밀 수출이 막히자, 세르비아와 북마케도니아, 헝가리, 불가리아, 몰도바, 카자흐스탄 등 인근 소규모 생산국들도 연쇄적으로 밀·옥수수의 해외 반출 금지에 나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밀에 의존해온 레바논과 알제리, 이집트 등 중동·북아프리카 국가들은 하루아침에 주식(主食) 공급이 위협받게 됐다. 
이집트는 밀·옥수수 등의 식자재 반출을 철저히 차단하는 동시에 미국산 밀을 들여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3일 전했다.

 

 

<인도네시아가 수출금지한 팜유의 원료인 야자열매 - 인도네시아 농부들이 팜유 원료인 야자열매를 운송하고 있다. 
세계 1위 팜유 수출국인 인도네시아는 지난달 28일 팜유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해바라기씨유가 부족해지면서 팜유 가격이 40~50% 급등해 반정부 시위까지 벌어지자 정부가 수출 통제에 나선 것이다.>

 

 


빵과 국수를 주식으로 하는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미주 국가들에 모두 밀 대란이 덮쳤지만, 특히 경제·정치적으로 불안한 나라들이 약한 고리로 떠올랐다. 
지난 2011년 식량 부족과 물가 폭등이 반정부 시위로 번진 중동의 ‘아랍의 봄’ 같은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수입 식량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중동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향후 화약고가 될 수 있다”면서 “밀의 대체재인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에도 여파가 곧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 흑해산 해바라기씨유 수출이 끊기자 글로벌 식용유 시장도 연쇄 대란을 겪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달 28일 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 금지 쇼크다. 
글로벌 해바라기씨유 부족으로 팜유 1위 수출국인 인도네시아에서 필수 식자재인 팜유 가격이 40~50% 뛰며 반정부 시위가 일자 정부가 해군 함정까지 동원해 식용유 원료와 가공유의 전면 수출 통제에 나섰다. 
팜유 대체재인 북미산 대두유와 카놀라유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자 대두유 최대 수출국인 남미 아르헨티나는 대두 수출세를 올렸다. 
영국 등 유럽에선 1인당 식용유 구매 제한이 시작됐다.


농작물 작황에 직결되는 비료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지난해 최대 비료 수출국인 중국이 자국 재고 확보를 위해 수출을 통제한 데 이어 최근 러시아가 비료 수출을 중단하면서 여파가 세계에 미치고 있다. 
국제 비료 가격은 암모니아 생산 원료인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벨라루스의 탄산칼륨 수출 제한이 겹쳐 연일 뛰고 있다. 
각국 농민들이 비료를 제대로 못 쓰게 되면 가뭄 등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밀·쌀·옥수수·대두 작황이 크게 타격을 받을 수 있다.


20세기 냉전 종식과 함께 세계에 번영을 가져다준 것은 자유무역과 세계화였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미·중 패권 전쟁에 이어 미·러 충돌 등 신(新)냉전 속에 세계 경제가 블록화되며 탈세계화가 시작됐고, 지난 2020년부터 코로나 팬데믹으로 촉발된 원자재 부족과 공급망 병목에 대응해 각국이 전략 물자 수출을 틀어막고 리쇼어링(reshoring·제조업의 본국 회귀)으로 선회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탈세계화 경쟁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미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이 같은 각국의 쇄국 경쟁에 “자유무역을 중단하면 성장도, 혁신도, 투자도 멈춘다”고 했다. 
세계무역기구(WTO)도 “보호 무역에 빠져들면 당장은 자국 내 물가를 통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글로벌 물가가 더욱 오르게 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스는 “지금은 모든 국가가 죄수의 딜레마(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한 선택이 모두에게 불리한 결과를 낳는 현상)에 빠져있다. 혼자 수출 규제를 안 하면 내수가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라고 했다.(22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