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56]업계에서는 ‘최고의 부업’ 또는 ‘은퇴 후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라는 말이
ironcow6204
2022. 6. 20. 10:29
‘한 달에 한 번 회의 출석에 1억4750만원의 연봉.’
지난해 삼성전자 사외이사의 활동과 보수를 요약한 말이다. 삼성전자 외에도 SK이노베이션(1억2240만원), SK텔레콤(1억2220만원) SK하이닉스(1억1730만원) 등 지난해 사외이사들에게 억대 연봉을 지급한 대기업은 총 10곳에 달했다. 2019년만 해도 사외이사에 억대 보수를 제공하는 곳은 엔씨소프트(1억9800만원)·삼성전자(1억5100만원)·삼성물산(1억5000만원) 3곳뿐이었는데 2년 사이에 10곳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는 기업분석전문업체 한국 CXO연구소가 15개 주요 업종별 매출 상위 20곳씩 총 300개 상장기업의 사외이사 보수를 조사한 결과다.
27일 한국 CXO연구소에 따르면 이들 300개 상장기업의 사외이사들의 평균 보수는 5410만원이었다. 2019년(4880만원)에 비해 10% 이상 증가한 액수다.
특히 억대 보수를 받는 사외이사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만 해도 1억원이 넘는 연간 보수를 받는 사외이사는 3개사 16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2년 사이에 10개사 55명으로 늘었다. 2019년 사외이사 연봉이 2억원에 가까웠던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8000만원대로 떨어진 반면 네이버, 현대모비스, KT, 현대자동차 등이 ‘사외이사 보수 1억 클럽’에 새로 이름을 올렸다. 오일선 CXO연구소 소장은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바람이 불면서 이사회 중심 경영이 강조되다 보니 주요 기업들이 명망가를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이들에게 지급하는 보수 규모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외이사 보수는 업종별 차이가 극명했다. 전자업종 사외이사가 평균 7452만원으로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유통·상사(7277만원), 석유·화학(6927만원), 정보통신(6604만원) 자동차(6410만원) 순이었다. 반면 패션업종의 사외이사는 1인당 평균 3070만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들은 사업보고서에 드러나는 보수에 더해 유무형의 각종 혜택을 받는다. 의료지원·건강검진에다 최고경영진들이 주기적으로 골프 회동도 갖는다. 회사 소유 리조트나 고급 호텔에서 워크숍을 여는 등 무형의 혜택도 적지 않다. 일부 대기업은 코로나 발생 이전에는 사외이사를 위해 연말 대규모 송년 행사도 여는 등 각별하게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 10대 그룹 고위 임원은 “갈수록 사외이사 권한이 커지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사외이사에게 쏟는 정성도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최고의 부업’ 또는 ‘은퇴 후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최근에는 여성 사외이사들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오는 8월부터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상장법인은 이사회에 반드시 여성을 한 명 이상 포함하도록 규정한 자본시장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달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요 대기업들은 여성 사외이사 모시기에 혈안이었다. 각 헤드헌팅 회사들마다 “괜찮은 여성 사외이사 후보 없느냐”는 문의가 쏟아졌다. 그 결과 지난 연말만 해도 총 252명이었던 상장사 여성 사외이사 숫자가 올 4월 350명으로 100명 가까이 늘었다.
대기업 사외이사들은 관료 출신과 학계 출신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법원·검찰이나 청와대·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기획재정부 등 이른바 힘 있는 기관 출신들이 인기다.
최근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사법연수원 동기(23기)들이 주요 대기업 ‘사외이사 후보군’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기업 관계자는 “교수들은 각종 정부 위원회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정부 정책 변화나 규제에 빨리 대응할 수 있고 장·차관 등 고위 관료로 발탁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보험용으로도 좋은 카드”라고 말했다.
사외이사가 CEO나 창업자들을 쫓아내기도 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 사외이사들은 이사회 안건 찬성률이 매년 100%에 육박해 ‘거수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 대기업 사외이사는 “하는 일에 비해 보수도 높고 혜택도 쏠쏠한 꿀보직이다 보니 발탁해준 사람의 뜻에 어긋나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22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