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36]봄 업무는 ‘교육’이 아니라 ‘보육’이고, 돌봄교실 업무가 너무 많아서 본업인
ironcow6204
2022. 3. 24. 10:08
자,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26일 오전 10시 경기 화성에 사는 워킹맘 심모(41)씨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올 초등 2학년이 되는 딸을 방과 후 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아 오후 5시까지 학교에서 운영하는 돌봄교실을 신청했는데, 신청자가 많아 온라인 추첨을 한다고 했기 때문. 경쟁률은 1.7대1. 교사가 컴퓨터로 자동 추첨을 하고, 이를 화면으로 부모들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줬다. 심씨는 기대와 달리 ‘대기 9번’을 뽑아 탈락했다.
그는 “이제 수업이 끝난 애를 (퇴근 전까지) 학원 뺑뺑이 시키는 수밖에 없겠네요”라며 울상을 지었다.
<지난 19일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들이 초등 돌봄교실 대상자들을 추첨하고 있다.>
오는 3월 신학기를 앞두고 돌봄교실 추첨 시즌이 오면서 올해도 학부모들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돌봄교실은 맞벌이나 저소득층 가정의 초등 저학년 자녀를 별도 교실에서 오후 5시 정도까지 돌봐주는 제도로 2004년 도입됐다. 급·간식비를 빼곤 무료인 데다 학교에 머물 수 있기 때문에 학부모들 호응이 높다. 문제는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초등돌봄교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거 공약으로 확대를 추진하면서 2010년 6200교실에서 2014년 1만966교실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이용 학생도 10만4496명에서 22만1310명으로 약 두 배로 늘었다. 문재인 정부도 돌봄교실 확대를 추진했다. 작년에만 1만4774교실 28만3000명이 이용했다.
그러나 신도시가 많은 서울이나 경기는 수요를 다 충족하지 못한다. 경기도는 작년 6만9759명 신청에 6만3833명만 ‘합격’했다. 6000명 가까이 탈락했다. 추첨에서 떨어진 것이다. 서울에서도 1000명 정도가 돌봄교실 입성에 실패했다. 인터넷 맘카페에는 탈락한 엄마들 하소연이 넘쳐난다. 한 학부모는 “둘째 아이가 올해 1학년 입학이라 운동장에서 1시간 달달 떨며 기다렸다 돌봄교실 추첨에 응했는데 광탈(빛의 속도로 탈락)했다”면서 “맞벌이하면서 애 키우기 정말 힘들다”고 했다. 역시 탈락한 경기 고양 한 예비 초 1 학부모는 “애는 낳으라면서, 모두 들어갈 수 있게 해줘야지 이걸 추첨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 돌봄교실은 대부분 1·2학년 대상이다. 하지만 3학년 이상 학부모 중에서도 이용하고 싶다는 경우가 많다. 교육부가 작년 1~6학년생 학부모 대상 수요 조사를 했는데, 이용 희망자의 30%는 3학년 이상이었다.
돌봄교실은 보통 저소득·한부모 가정 등을 1순위, 맞벌이 가정을 2순위로 선발한다. 그런데 신청자가 몰리는 일부 학교는 다자녀 가정을 3순위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 “아이가 하나라고 돌봄이 덜 필요한 것도 아닌데 속상하다”고 했다.
돌봄교실이 부족한 이유에 대해 교육부는 “획기적으로 늘리고 싶지만, 쉽지 않다”고 했다. 학교들이 돌봄교실을 늘리는 데 소극적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이다. 각 학교에서는 돌봄 업무는 ‘교육’이 아니라 ‘보육’이고, 돌봄교실 업무가 너무 많아서 본업인 아이들 교육에 집중할 수 없다는 불만이 종종 나온다. 교사들은 돌봄교실에 초등돌봄전담사(교육공무직)가 있긴 하지만, 관련 행정 업무를 교사들이 해야 한다는 이유로 달갑지 않아 한다. 최근 충북교육청에선 전교조 충북지부장 등이 “돌봄교실 행정 업무를 돌봄전담사가 전담하도록 해달라”고 주장하며 농성까지 벌였다.
이러다 보니 올 신학기부터 돌봄교실 공간이 없으면 ‘모듈러’(임시 시설)를 지원해주겠다고 교육부가 나섰지만 신청한 학교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실제 공간이 없는 곳도 있지만 이런 기피 분위기가 한몫했다는 해석이다.
반면, 돌봄전담사들은 “행정일까지 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며 처우 개선을 요구한다. 전국 1만1000여 명 전담사 하루 근무 시간은 4~8시간. 56%는 하루 6시간 미만(2021년 8월 교육부 자료)이다. 경기 수원 한 초등학교장은 “아이들 생각하면 돌봄교실을 늘려야 하지만, 교사들 다독여야지, 전담사 관리해야지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한국교총은 학교는 장소를 제공하되, 돌봄교실 운영과 인력 관리는 지자체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자체가 돌봄 업무를 관리하는 내용의 ‘온종일돌봄체계운영지원특별법안’도 국회에 발의된 상태. 하지만 돌봄전담사들은 신분 안정 등 이유로 돌봄 업무가 지자체로 넘어가는 걸 반대하며 여러 차례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교육부 담당자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마을 돌봄교실 등도 확대하고 있지만, 결국 학교에서 나서줘야 하는데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22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