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낯선 사람이 자신의 차 앞에 끼여들려고 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흘려 보내며 남은 하루를 잘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욕부터 하며 분개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대신, 나중에 다른 누군가에게 그 사건에 대해서 핏대를 올리며 얘기하지는 않는가? 만약 그게 도저히 안된다면 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렇게 마구 서두르는 행동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은 어떠한가?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문제에 휩쓸리는 실수를 피할 수 있다.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얼토당토 않은 비난을 듣거나, 꺼림칙한 일을 하게 되더라도, 사소한 것들을 신경 쓰지 않는 방법을 깨닫는다면 그에 따르는 보상은 엄청나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사소한 일에 끙끙대느라 정력을 낭비하고, 인생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만약 지금부터라도 사소한 일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한다면, 놀랍게도 좀더 강해지고 더욱 친절하고 유연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완벽에 대한 욕구와 내적 평화에 대한 욕망은 서로 대립된다. 뭔가를 어떤 특정한 방식을 통해 얻으려고 집착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때부터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하기보다 잘못된 점과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한다. 항상 무언가 잘못되고 부족하다는 생각에 시달린다는 것은 현재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자기 자신(어수선한 옷장 안, 차의 긁힌 자국, 완벽하게 끝내지 못한 일, 몇 푼 안되는 수입)과 관계가 있건,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완벽하지 못한 점(외모, 행동 양식, 삶의 태도)과 관계가 있건간에, 불완전한 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 자체가 친절하고 유연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목표에 다가가는 것을 가로막는다. 불완전한 상태에 만족하라는 것은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그만두라는 말이 아니다. 단지 삶의 잘못된 점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그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데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삶은 지금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고 끊임없이 상기시켜라. 삶의 모든 부분에서 완벽해지고자 하는 욕심을 없애는 그 순간, 현재의 삼 자체에서 완벽함을 발견하게 될테니까.
제멋대로 부풀어오르곤 하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문제의 세부적인 사항에 집착할수록 불안감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언제나 한 가지 생각은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며, 결국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흥분하게 된다. 가령,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다음날 걸어야 하는 전화를 떠올릴 수도 있다. 이때 문제는 중요한 전화를 떠올린 것에 대해 안도하기보다는 다음날 해야 하는 다른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상사와 나누게 될지도 모르는 대화를 마음속으로 연습하며 스스로를 더욱 초조하게 만든다. 그러고는 '도대체 나라는 인간은 왜 이렇게 바쁜 거지? 나는 하루에 전화를 50여 군데나 해야 돼. 도대체 사는 게 왜 이 모양이지?'라는 생각을 하며, 끝내는 자신을 측은하게 여긴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러한 '생각의 공격이 한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실제로 나는 상담자들로부터 그들이 많은 낮과 밤을 머릿속으로 불필요한 연습을 하는 데 낭비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머릿속이 걱정과 짜증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는 평화를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생각이 제멋대로 부풀기 전에 자신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재빨리 알아채는 것이다. 생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빨리 깨달을수록 생각을 중단하는 일이 그만큼 더 수월해진다. 위에서 든 예처럼, 이튿날 할 일들을 미리 머릿속으로 그려 봄으로 인해서 사고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때, 이튿날 할 일에 대해서 강박적이 되는 대신, "휴, 또 시작이군"하고 말하며 의식적으로 생각의 싹을 자를 수도 있다.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전에 그것을 중단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얼마나 압도당해 있는가 하는 사실이 아니라, 내일 걸어야 할 전화를 떠올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이런 순간을 대비해서 펜과 종이를 머리맡에 준비해 두면 좋을 것이다. 실제로 당신은 무척 바쁜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일에 짓눌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스트레스만 늘리고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 효과에 놀라게 될 것이다.
물론 이는 의식적인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매순간, '언젠가는' 행복해지리라 믿으며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일찍 승진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또 다른 일들이 해결되면 삶이 즐거워질 것이라고 자신에게 타이른다. 그러고는 어린 자녀에 대해 걱정하면서 아이들이 좀더 크면 마음에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좀더 자란 후에는, 상전같이 다루기 힘든 10대가 된 자식 걱정으로 편안할 날이 없다. 이렇게, 우리는 인생의 각 단계에서 지금 이 시기를 벗어나게 되면 틀림없이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다. 최선을 다한 후, 좋은 차를 사고, 멋진 휴가를 떠나고, 결국에는 은퇴를 했을 때 비로소 완전해지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행복에의 기대만 끝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행복을 움켜잡기에 '지금'보다 더 나은 때는 없다. 지금이 아니라면 도대체 그때가 언제란 말인가? 어찌 됐든 인생에는 항상 어려운 도전들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이 점을 받아들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해지기로 '결심'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나는 알프레드 디 수자가 한 다음의 말을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항상 먼저 해결해야 하는 장애나 끝내지 못한 일, 노력해야 할 시간, 갚아야 할 빚이 그 앞에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인생은 시작되었고, 마침내 나는 이러한 장애가 바로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그것이 무엇이든 현재 가장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항상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거나, 불운한 상황을 실제보다 훨씬 더 비관적인 눈길로 바라고, 인생이 위급 상황인 양 행동하는 습관에 젖어 있다면, 우리의 삶 역시 이러한 습관의 반영물이 되고 만다. 끌어낼 수도 있다. 나는 인간은 연습을 통해 완벽해질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매일 매일의 습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인생 전체를 원대한 계획으로 가득 채우고, 목표 달성을 향해 항상 자신을 질책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내적, 외적 습관을 의식하는 것이 삶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어디에 관심을 쏟고 있는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자신이 정한 목표에 도움이 되는 습관을 개발하고 있는가? 자신이 기대해 온 인생이 실제 자신의 인생과 일치하는가? 혹시 "나는 좀더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고 싶어" 혹은 "나는 항상 명상법을 배우고 싶었어"하고 말하면서도 어찌 된 일인지 시간이 없어 그렇게 하지 못하지는 않았는가? 재미도 없는 시시껄렁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 하지만 만일 매일같이 시간을 내서 하는 일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점을 명심한다면, 분명 이전과는 다른 일들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연민이란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타인의 입장이 되어, 자신이 그와 같은 곤경에 처하게 되면 어떨지 상상해 보는 동시에 그 사람에 대해서 사랑을 느끼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문제와 고통, 그리고 좌절 역시 우리 자신의 것만큼이나 실제적이며, 때로는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타인에게 어떤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우리는 마음을 열고 감사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의도를 통해 자신의 문제로부터 타인의 문제로 관심을 확장하는 것이다. 행위는 '그것과 관련해 당신이 행하는 구체적인 거'이다. 우리는 마음에서 우러나, 정기적으로 약간의 돈을 기부하거나 시간을 내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아니면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미소를 보내거나 인사를 건넬 수도 있다. '무엇'을 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뭔가를 '한다'는 사실이다. 테레사 수녀가 말했듯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위대한 일을 할 수는 없다. 단지 위대한 사랑을 갖고 작은 일들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잠시 시각이라는 선물(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기적부터 시작해), 사랑이라는 선물, 그 밖의 많은 삶의 기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라. 자신이 '대단한 일'로 생각하는 것들이 실은 지나치게 과장된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슬프게도,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너무나 오래도록 방치해 주는 바람에 그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데 흥미를 잃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는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강박 관념은 일시적일 뿐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일을 마친 후에는 차분해지고 여유로워지며 행복해질 거라고 스스로에게 타이른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드물다. 어떤 일이 해결된 후에는 또다시 새로운 일이 우리를 짓누르게 되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는 항상 해야 할 전화가, 완성해야 할 프로젝트가, 끝마쳐야 할 일이 있다. 현실적으로 속이 가득 찬 '바구니'야말로 성공에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을 이룩하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당신이 누구이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당신 자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 마음의 평화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면, 결코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거의 모든 일이 우리가 기다릴 수 있는 것들이며, 극히 적은 부분만이 '위급한 일'에 속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기만 하면 그것은 조만간 이루어진다. 목표를 달성하는 데 따르는 강박 관념을 통제하기가 훨씬 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점을 생각해보라. 다른 누군가가 당신을 대신해서 그 일을 할 것이다!
그후 나는 이 습관이 나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손상시킬 뿐 아니라, 한꺼번에 두 사람 몫의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킨다는 점에서 얼마나 파괴적인 것인지 깨달았다. 누군가의 말을 재촉하고, 중간에 끼여들고, 그가 문장을 끝내도록 하려면, 자신의 생각뿐 아니라 가로막고자 하는 상대방의 생각 또한 한꺼번에 좇아가야 한다. 이러한 경향은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흔한 것으로, 양쪽 모두 말과 생각을 빨리 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서로를 초조하고 안달나게 만들며 짜증나게 한다. 그것은 정말이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또한 이것은 잦은 논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얘기를 듣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분개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향해 말하면서 어떻게 그가 말하는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겠는가? 일단 자신이 다른 사람의 말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이러한 무의식적인 경향이 눈에 보이지 않게 생긴, 악의 없는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더없이 좋은 소식이다. 이런 경우에는 단지 말하는 것을 그만두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대화가 시작되기 전에, 스스로에게 인내력을 갖고 기다리라고 타일러라. 자신의 차례가 될 때까지 상대가 얘기를 끝마치는 것을 기다리겠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어라. 그러면 이 간단한 행동만으로도 만나는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이 크게 향상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훨씬 편안하게 느낀다. 굳이 상대의 얘기를 가로막으려고 애쓰지 않을 때, 자신 또한 편안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심장 박동은 느려지고, 대화를 성급하게 끌고 나가기보다는 즐기게 된다. 이것은 좀더 여유 있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서류가 없어졌어. 누가 치운 게 분명해." 이처럼 '남의 탓'을 하는 태도는 우리 문화 전체에 만연되어 있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런 생각은 자신의 행동이나 문제, 혹은 행복을 전적으로 자기 스스로의 책임이 아닌 것처럼, 책임질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사소한 법정 소송의 원인이 되며, 때로는 범죄자를 풀어 주는 우스꽝스런 핑계로 악용되기도 한다. 남을 탓하는 습관은 분노, 좌절, 의기소침, 스트레스뿐 아니라, 불행한 삶까지 남의 책임으로 돌리게 만든다. 그러나 남을 원망하고 그의 잘못을 탓하기만 하는 사람은 결코 평화로운 삶에 가까워질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일으킨 문제로 좌절하게 되는 일도 분명히 있지만, 그러한 상황에 대처하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행복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상황은 사람을 구속하지 않는다. 단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드러낼 줄뿐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타인을 탓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지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단순히 일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않는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행복과 타인, 주변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의미이다. 집안이 엉망일 경우, 자기 혼자만 일을 다 한다고 투덜대기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것을 치우도록 하라. 수입에 비해 지출이 클 경우, 어떻게 하면 돈을 더 아낄 수 있는지 고심하라. 현재 극도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오로지 자신만이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타인을 원망하는 데는 엄청난 양의 정신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것은 스트레스와 불편함을 낳는, '나를 끌어내리는' 사고 방식에 불과할 뿐이다. 왜냐하면 결국 자신의 행복을, 타인의 행동에 좌우되는 통제 불가능한 부수적인 것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감각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화가 났을 때에도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조종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딸라 좀 더 새롭고 바람직한 감정이 솟아오르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더 이상 타인을 책망하지 않을 때, 인생은 즐겁고 편안하게 흘러간다. 자기 주변에 대한 불평을 멈추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간단하고 실용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더욱 평화롭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 간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 커피 한 잔을 대충 마시고는 직장을 향해 달려나간다. 그리고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린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다. 집에 남아서 자녀와 시간을 보내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대개 자녀를 돌봐야 할 시간에 맞춰 일어나기 마련이다. 아침을 쫓기듯이 허겁지겁 시작하는 사람에게 다른 일을 할 시간이 거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직장을 나가든, 아이들을 키우든, 혹은 두 가지 일을 모두 하든 간에, 대부분의 경우 몹시도 지쳐서 자신을 위한 시간은커녕 한숨 돌릴 여유조차 갖지 못할 것이다. 분명 인생에는 직장과 자녀를 돌보는 일, 그리고 잠 이상의 것이 있어야 한다. 피로감을 극복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충족감의 결여와 뭔가에 의해 압도당하고 있다는 느낌, 이 두 가지 모두가 피로를 가중시킨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바대로, 잠을 조금 덜 자고 자신을 위해 좀더 많은 시간을 갖는 것이야말로 삶의 고단함과 싸워 나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하루 일과가 시작되기 전 한두 시간을 오직 자신만을 위해 할애하는 습관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항상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 일어난다. 조용히 커피 한잔을 마신 후, 요가와 명상을 한다. 그런 다음 위층에 올라가 잠시 글을 쓴다. 그리고 좋아하는 책을 한두 장 정도 읽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고는 하던 일을 멈추고, 산 위로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감상한다. 그 시간에는 전화벨도 울리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부탁을 해오지 않는다. 반드시 해야만 할 일도 없다. 이때가 나의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깰 무렵이면, 나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으리라는 행복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날 얼마나 바쁘건, 해야 할 일이 얼마가 되건 간에,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을 잘 안다. 나는 결코 기만당하거나 이용당했다는 느낌을 받지 않으며(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 내 인생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끼지도 않는다. 이러한 시간을 통하여, 나는 고객, 내가 믿고 따르는 사람들뿐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에게 좀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변화가 그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였다고 내게 말하곤 한다. 난생 처음으로 전에는 결코 누릴 수 없었던 조용한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독서를 하고, 명상을 즐기고, 일출을 감상하면서 완전한 고용함이 자기 안에서 퍼져나가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고. 이른 아침에 경험하는 충족감은 바쁜 일과 때문에 빼앗긴 잠을 보충하는 것 그 이상이다. 아니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물론 필요한 경우에는 밤에 텔레비전을 끄고, 한두 시간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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