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떻게 이 장면들을 찍었나… 퓰리처상 기자의 5가지 비결


[What & Why] AP 기자 에번 부치의 사진 분석


지난 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 유세 현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총격 사건이 발생하자 이와 관련된 각종 동영상과 사진이 공유되고 있다. 
이 중 모두의 이목을 끈 것은 영상이 아닌 단 한 장의 사진이었다. 
2021년 퓰리처상 수상자이기도 한 에번 부치 AP 사진기자가 찍은 것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영상은 실시간으로 현장의 혼돈을 포착한 반면, 이 한 장의 사진은 ‘난 괜찮고, 강하다’라는 (트럼프의 목소리를) 담아냈다”고 썼다. 
영상이 범람하는 시대에도 때로는 사진 한 장이 더 큰 충격을 안길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총격에서 트럼프 대피까지 걸린 시간은 2분 남짓이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사진이 틀림없다는 평가를 받는 이 한 장은 어떻게 나왔을까. 비결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 -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자 이에 분노한 시위대가 2020년 5월 워싱턴 DC 거리에 세워진 차량들을 뒤집는 모습. 
이 사진으로 부치는 이듬해인 2021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찍는다

피사체와 가까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줌(zoom) 기능으로 화면을 잡아당겨 찍는다 해도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담아낼 수 없다. 
당시 현장 영상을 보면, 트럼프가 연설 중이던 연단 아래 서 있던 사진기자 네댓 명 모두 총소리가 나자마자 트럼프 주변으로 다가간다. 
총소리가 나면 보통 사람들은 겁을 내며 도망가지만, 사진기자들은 더 가까이서 사진을 찍기 위해 달려든다.


이날 AP는 유세 현장에 사진 기자 두 명을 배치했다. 
2001년부터 AP에서 일한 ‘고참’ 부치가 단상 바로 아래서 트럼프의 근접 촬영을 맡았다. 
후배 기자는 관중석 뒤 먼 곳에서 망원 렌즈로 현장 전체의 모습을 담았다. 
대통령이나 대선 후보 등 주요 인사의 유세 현장은 보안 등의 문제로 기자 90%가 먼 곳에 위치하고 나머지 소수의 기자에게만 연단 아래에서의 근접 촬영이 허용된다. 
연단 바로 밑은 위를 올려다보며, 가장 가까이서 인물을 영웅적으로 부각시켜 찍을 수 있는 장소다.

 

 

 



◇상처 쪽으로 비친 ‘햇빛 조명’

이날 총격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햇빛이 ‘조명’ 역할을 했다. 
트럼프는 오른쪽 귀에 총상을 입어 얼굴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햇빛이 오른쪽으로부터 사선 방향으로 비쳤다. 
그의 상처와 높게 치켜든 오른손 쪽으로 비친 햇빛은 무대 주인공을 향한 ‘핀 조명’과 같은 효과를 냈다.


전문가들은 베테랑인 부치 기자가 (찍는 사람 입장에서) 더 왼쪽으로 옮겨 트럼프의 오른쪽 얼굴이 부각되도록 위치를 조정했다고 본다. 
경호 요원의 검은 의상 덕분에 햇빛을 받은 트럼프 얼굴이 온전히 부각되는 행운도 겹쳤다.

 

 


<알고 보니 주짓수 선수 - 에번 부치의 취미는 주짓수다. 그가 자신이 딴 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하늘이 배경일 때의 ‘힘’


주먹을 치켜든 트럼프의 뒤로는 성조기와 함께 새파란 하늘이 보인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트럼프의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냈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한 세트에서 찍은 사진처럼 보이는 이유다. ‘조작설’마저 제기된다.


배경이 단색인 덕분에 사진을 보는 이들은 트럼프의 몸짓과 표정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다른 각도에서 찍은 타사 기자들의 사진 중엔 트럼프의 뒤에 앉아 있던 군중 등 복잡한 배경이 걸린 사진이 적지 않다. 
현장의 혼란스러운 모습은 담겼지만, 트럼프에 대한 집중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진들이다.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찍다

당시 현장 영상을 보면, 부치 기자는 거의 유일하게 카메라의 ‘뷰파인더’에 눈을 붙이고 있다. 
뷰파인더는 사진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 들여다보는 작은 창이다. 
카메라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뷰파인더보다는 (스마트폰 촬영처럼) 카메라 화면을 보고 찍는 경우도 많아졌다.


당시 현장에선 많은 사진 기자가 카메라를 들여다보지 않는 채로 높게 들어 찍었다(사진 기자들은 이를 ‘지향 사격’이라 부른다). 
급박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은 현장을 담으려고 선택하는 방식이다. 
반면 부치 기자는 뷰파인더에 눈동자를 붙이고 제대로 구도를 잡는 방식을 택했고, 이를 통해 ‘그 한 장’을 건졌다.


◇결국은 그래도 ‘운’

아무리 출중한 능력이 있다 해도, 완벽한 현장 상황이 받쳐줘야 이 같은 작품이 나온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트럼프 뒤 성조기는 마치 일부러 바람을 넣은 듯 휘날리면서도 구겨지지 않은 형태를 유지했다. 
운이 좋았던 셈이다. 
경호원 셋의 긴박한 표정과 트럼프의 비장한 표정은 완벽한 대비를 이룬다. 
심지어 경호원들은 모두 아래를 보는데 트럼프만 앞쪽을 올려다본다. 
경력 20년의 한 사진기자는 “순간 포착임에도 트럼프가 이런 각도로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은 ‘우연’ 말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부치 기자는 CNN에 “트럼프의 대피로라고 생각한 곳으로 갔는데 갑자기 그가 일어서며 주먹을 불끈 쥐기 시작했다”고 예측 불가였던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2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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