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는 첫손자의 출산을 돕기 위해 6주간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우리와 함께 보냈다.
어머니는 사진을 많이 찍으셨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을 때 매우 서운해하셨다.
긴 비행 끝에 댈러스에 도착한 어머니는 세관을 통과해야만 했다.
늘어선 줄은 길었고, 세관원들은 매우 까다롭게 짐검사를 했다.
기진맥진해 있던 어머니는 가방을 열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세관원이 어머니의 여행가방을 열고 신고할 것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있지요 ! 나는 금방 할머니가 되었답니다. 내 손자 사진을 보고 싶지 않으세요 ?"
"아니오, 감사합니다."
세관원은 이렇게 말하고 어머니를 그냥 보내 주었다.
<팅 팅 퍽 ㅎㅎ>
생태 사진가인 내 친구가 우리와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자신이 열대 정글에 있는 동안 먹었던 신기한 것들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때에 그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탐험하면서 그곳 원주민들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희고 큰 유충이 주요 요리로 나오자 그는 미국에서 즐기던 음식들을 못먹는 것을 서운하게 생각했다.
그와 함께 여행하고 있던 그 지방 사람이 그의 심경을 눈치채고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느낌인지 잘 알아요. 우리 마을에 있는 유충도 이것보다 맛있거든요."
<코브라 피니쉬 기술>
「네이션즈 레스토랑 뉴스」지에 실린 그 식당주인의 말에 따르면, 양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손님들도 몇 사람 있었지만
대다수의 손님들은 통상 지불해 오던 대로 적당하게 돈을 치렀다.
이 기발한 판촉 아이디어는 널리 알려져 그 레스토랑의 영업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불과 3주일이 지나자 가격이 적힌 옛 메뉴가 식탁에 다시 나타났다.
단골손님들이 주인에게 메뉴를 도로 갖다 놓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단골 고객들이 몹시 거북해하더군요."
주인이 말했다.
<좋아하는 이성과 자연스럽게 손을 잡아보자>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농촌 지방에서 이웃에 살고 있는 내 동생은 픽업트럭을 한 대 가지고 있다.
동생은 그 트럭을 아주 소중한 재산으로 여긴다.
동생은 자기 가족들과 함께 승용치를 타고 주말 휴가를 떠나면서 그 픽업트럭 열쇠를 나에게 맡겼다.
그래서 나는 그래도 제 형은 믿는구나 하고 흡족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녀석은 열쇠를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형, 열쇠를 맡길테니 혹시 우리 집에 불이라도 나면 트럭을 다른 데로 치워줘요."
<이거 상한거 같아>
이웃에 사는 조앤과 나는 영화광이다.
그러나 영화관에서 비싸게 파는 음식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조앤은 가끔 큼지막한 핸드백에 스낵을 넣어 가지고 가곤 했다.
하루는 조앤이 전자레인지에서 튀긴 팝콘 한 봉지를 핸드백에 넣어가지고 영화관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에서 표 받는 사람이 우리 두 사람을 불러 세우더니 이렇게 말했다.
"미안합니다만 음식은 가지고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뭐 때문에 내가 음식물을 가지고 들어간다고 생각하는거죠 ?"
조앤이 화를 내며 물었다.
"부인께서 드신 핸드백에서 김이 나고 있거든요." 그가 대답했다.
<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