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을 지낸 어느 칠순 인사가 강원도 고성 산골에 7년째 살고 있다.
그는 "시골 살이에서 가장 좋은 점은 나 자신이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400평 땅에서 과일나무를 키우고 밭농사도 짓는다.
지금껏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다.
집에서 자동차로 15분 걸리는 거리에 설악동, 봉포 바닷가, 영랑호가 줄지어 있으니 아무때나 나들이 간다.
그는 "아내가 선뜻 동의한 덕분에 시골 살이에 연착륙했다"고 고마워한다.
주변에서 아내가 반대해 전원생활의 꿈을 접는 친구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늘그막에 영감 없이는 살아도 친구 없이는 못 산다'며 낯선 시골에 가지 않겠다는 안방마님이 적지 않다.
손주 재롱을 자주 보기 어렵고 쇼핑 재미도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도시에 살던 부부가 시골 생활에 성공하기란 쉽진 않다.
남편이 아내를 데리고 산골에 들어갔다가 2년 만에 이혼한 사례도 있다.
아내가 장을 보거나 머리 손질이라도 하려면 번번이 읍내까지 나가야 하는 불편을 견디지 못했다.
남편은 시골집에 살지만 시골에 적응하지 못한 아내와 아이만 도시로 나와 전셋집에 사는 가족도 있다.
"적막하고 단조로운 시골에서 부부가 둘이서 할 일은 고스톱밖에 없더라"며 도시로 돌아온 이도 있다.
엊그제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30~40대 부부를 조사했더니 남편과 아내가 꿈꾸는 노후 생활이 너무 달랐다.
남편 75%는 은퇴한 뒤 전원생활을 원했지만 아내 65%는 대도시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부부가 함께 하루 6~10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답은 남편 56%인 반면 아내는 28%밖에 안 됐다.
평생 남편과 자식 수발했는데 늙어서도 시골에 묻혀 남편에게 하루 세 끼 챙겨주며 종일 매이는 게 끔찍할 수도 있겠다.
얼마 전 통계청이 "다시 태어나도 지금 배우자와 결혼하겠는가"라고 묻자 남자 43.6%가 '하고 싶은 편'이라고 반겼다.
여자 44.8%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고 심드렁하게 답했다.
'남편 만족도'가 형편없이 떨어진 세상이다.
밥 지을 줄도 모르는 남편일수록 나이 들면 아내 곁에 젖은 낙엽처럼 찰싹 달라붙는다.
늙은 아내가 기겁할 일이다.
18세기 프랑스 작가 프레보는 "부부를 맺는 고무줄이 오래가려면 탄력이 좋은 고무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요즘 남편이야말로 아내 뜻에 맞춰 굽혔다 폈다 하는 유연성을 젊어서부터 길러야 한다.
그래야 말년이 춥고 배고프지 않다.(1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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