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거품이 한창이던 10여년 전, 한 벤처기업인과 밤새도록 술을 마신 일이 있다.
몇 차를 거쳐 함께 쓰러진 곳이 내 집이었다.
다음 날 아침 깨질 듯한 두통과 울렁증을 참지 못하고 일어나니, 머리맡에 쪽지가 놓여 있었다.
'출근 시간이 다가와 인사도 못 드리고 먼저 일어납니다'.
와이프에게 물어보니 새벽에 나갔다고 했다.

 


당시 그는 '청년 재벌' 소리를 듣고 있었다.
'닷컴'의 정체와 미래가 불투명할 때라 "투자자들에게 사기를 친다"는 비난도 있었고 "운이 좋았다"는 냉소적인 평가도 따랐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날 쪽지를 보면서 아주 평범한 진리를 알았다.
'이렇게 부지런하니 돈을 버는구나'.
그 후 수많은 닷컴 기업이 사라졌지만 그가 만든 기업은 지금도 건강하다.

 


수행 비서들에게 악명이 높았던 경제 부처 장관이 있었다.
매일 새벽 관악산을 2~3시간씩 넘어서 과천 청사로 출근했기 때문이다.

체육 특기생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운동량을 함께해야 했으니, 수행 비서는 보통 고역(苦役)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장관이 획기적인 정책으로 이름을 날렸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없다.
대신 '자기 관리를 잘하는 관료'라고 하면, 누구나 그를 떠올렸다.
그는 공무원이 오를 수 있는 최고직까지 올랐다.
밖에선 '관운(官運)'이라고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건강한 습관이 운을 불렀다"고 말한다.

 


지난달 만난 일본의 한 스시(초밥) 요리사는 "새벽 6시에 생선 시장까지 12㎞씩 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자정까지 스시를 주무르려면 체력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 28년 동안 이런 습관을 반복했고, 앞으로 30년 동안 같은 습관을 반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가 반복하는 또 다른 습관은 교양 학습이다.
스시를 주무르면서 손님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독서와 경험을 통해 다방면의 상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그는 "손님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는 것도 교양"이라고 말했다.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는 이런 습관을 '반(半)종교적 의식(儀式)'이라고 말했다.
늘 좋아서 하는 습관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자신을 끌어가는 의식이라는 것이다.
'천재들의 창조적 습관'이란 책에서 그는 "천재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행함으로써 만들어진다"고 했다.

 


"×발, 세상 × 같다. 인생 사십 넘게 살아보니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부모 잘 만나는 것."
요즘 '우파의 싸움닭'으로 명성을 날리는 국회의원 강용석씨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그의 말대로 한국 사회에서 '부모 잘 만나는 것'은 특별한 혜택에 속한다. 그리고 이런 혜택이 줄어들수록 우리 사회가 건강해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이라는 의견엔 의문이 든다.

 


기자 생활 20년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다.
재벌가에서 태어났지만 "정신 못 차린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얻어맞아 정신이 혼미해진 이도 봤고, 중압감에 마약을 하거나

자살한 이까지 볼 수 있었다.
반면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타고난 성실함을 미덕으로 대기업 사장까지 오른 이도 많이 만났다.
강 의원이야말로 '자기 관리'라는 의식을 반복했다면 '못나고 가난한 부모'가 그의 인생에 오히려 힘이 되고 득(得)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인생 사십 넘게 살아보니' 나는 세상이 점점 더 아리송해진다.
그런 가운데 겨우 터득한 한 가지 깨달음이 있다.
세상 이치를 떠들기에 '사십'이란 연륜은 너무 짧고 유치하다는 것이다.(120220) -선우 정(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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